[여의도 포럼-이근식] 진정한 법치주의 기사의 사진

현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법치주의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신자유주의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극단적인 주장을 여럿 하였다. 중앙은행의 독점적 화폐발행권을 폐지하고 모든 민간은행에 은행권 발행을 허용하라든지, 분배정의란 도깨비불처럼 내용은 없고 사람을 현혹시키는 말에 불과하다든지, 인간의 이성을 이용한 모든 의도적 사회개혁은 잘못이라는 주장 등이 그러한 예이다.

그러나 역시 대학자답게 귀를 기울일 말도 많이 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법에는 자유를 보호하는 자유의 법과 정부를 위한 정부의 법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자유의 법은 오랜 세월 동안 진화의 결과로 형성된 것인 반면에 정부의 법은 정부가 국민을 지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법이라고 그는 보았다.

자유의 법, 정부의 법

이와 비슷하게 법치주의도 전근대적 법치주의와 근대적(진정한) 법치주의의 둘로 나눌 수 있다. 인권과 자유의 개념이 없던 전근대 사회에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법치주의란 왕이 만든 법을 모든 백성이 무조건 따라야 함을 의미하였다. 왕과 그 부하들은 법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억압하고 핍박하였다.

소수의 부자들이 다수의 빈민들로부터 자신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 국가와 법이라고, 카를 마르크스만이 아니라 애덤 스미스도 말하였다

2000년 넘게 중국 왕들의 전통적 통치이념이 되어 온 한비자(韓非子)의 법가(法家)도, 법의 주된 목적은 왕이 백성을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데에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전근대적인 법치주의를 비판하고 등장한 것이 근대 서양의 자유주의자들의 근대적 법치주의이다. 이들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주된 적(敵)은 왕과 그 부하들이므로, 이를 막기 위해 법으로 왕과 그 부하들의 횡포를 엄격히 금지하고, 개인의 자유와 재산과 권리를 분명하게 규정하여 보호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이들은 이러한 올바른 정의의 법을 자연법이라고 부르고 현실의 법을 자연법과 일치시켜야 된다고 보았다. 자연법이란 하나님이 만든 것으로 국가가 등장하기 이전의 자연상태부터 존재하던 법이란 뜻이다.

이처럼 전근대적인 법치주의와 근대적 법치주의의 목적과 기능은 정반대이다. 전근대적 법치주의는 왕이 백성들을 자신의 이익에 맞게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것이었던 반면에 근대적(자유주의적) 법치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국가권력의 횡포를 엄격히 금지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스미스가 자유시장경제의 전제조건으로 강조하였던 사유재산제도의 확립도 왕으로부터 백성들의 재산을 보호하는 것에 있었다.

두 법치주의 간의 이러한 차이는 근대적 법치주의가 고문을 금지하고 폭정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권을 인정하는 데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국가권력 앞의 인권 보호해야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미국 등에서 시민혁명이 성공하면서 이런 근대적 법치주의가 현실에서 실현된 이후 현대의 모든 나라의 법은,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근대적 법치주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제정되어 있다. 즉, 현대의 법들은 자유를 포함한 개인들의 인권을 국가권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한다.

고위공직을 맡았던 은사님 한 분이 우리나라에는 법 위에 국민정서가 있고 국민정서 위에 떼법이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법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경우를 우리나라에서 적지 않게 본다. 현 정부가 내걸고 있는 법치주의의 확립에 국민들이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떼 법에 대한 반감 때문일 것이다. 떼쓰는 일부 국민들도 문제지만, 정부가 전근대적 법치주의를 진정한 법치주의로 착각하고 있는 것도 현재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한 원인인 것 같다.

이근식 (경실련 공동대표,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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