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래창 (1) 40년 교회학교 봉사 ‘평생의 자산’

[역경의 열매] 박래창 (1) 40년 교회학교 봉사 ‘평생의 자산’ 기사의 사진

“군대 제대하고 하도 취직이 안 되니까 하나님께 ‘뭐든지 시켜 주시면 죽을힘을 다해 하겠습니다’라고 서원 기도를 올렸는데 그 직후 주신 일이 생업이 아니고 교회학교 교사였습니다. 그때부터 65세까지 40년간 교회학교에서 봉사했습니다. 교사들과 신앙의 교제를 하고, 아이들 가르치기 위해 설교 열심히 들은 것이 신앙생활의 기반이 됐습니다. 그 가운데 사업은 위기마다 하나님께서 손잡아 주셔서 신나게 해왔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일을 앞에 두고 살아 보십시오. 세상의 성공은 자연히 따라옵니다.”

2007년 한일장신대 채플 시간에 특강을 했다. 처음 특강 제안이 왔을 때 “학생들 앞에서 할 만한 이야기가 없다”고 거절하니 그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며칠을 두고 지난날들을 떠올리다 보니 70 평생을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구나 싶었다.

나에겐 날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평생 있었다. 어릴 때는 외할머니께서, 좀 자라서는 전도사셨던 외숙모께서, 결혼해서는 장모님께서, 그리고 또 여태껏 교회와 교단의 수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셨다.

네 살에 어머니를, 열두 살에 아버지를 여읜 뒤로 배곯고 잘 곳 걱정하는 날 많았지만 바로 그 기도 덕에 결국은 크리스천으로서 잘살게 됐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십자가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요 14:18)고 하신 말씀대로 나를 버려두지 않고 부모 역할을 대신해 주신 것이다.

그런 뭉클함을 느끼며 특강을 무사히 마쳤다. 그런데 그날부터 마음에 부담이 느껴졌다. 마치 개학이 코앞인데 방학 숙제를 못 마친 학생 같은 기분이었다. 곰곰이 짚어보니 장로직 은퇴(2009년 12월27일) 전까지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자고 마음먹은 일이 떠올랐다. 갈수록 그 결심이 물 위에 기름 떠오르듯 또렷해졌다. 몇 달 후 시간을 내 한일장신대 정장복 총장을 찾아갔다.

“총장님, 혹시 학교에 어려운 일이 있으십니까?”

“왜 그러시지요?”

“제가 지난 번 특강 이후로 뭔가 학교에 도움 되는 일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서요.”

“도움 될 일이라면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수도 없이 있지요.”

그렇게 말하고는 정 총장도 말이 떨어지지 않는지 입을 다물었다. 나도 구체적으로 마음먹은 것은 없는지라 멀뚱히 바라보고 있자니 잠깐 침묵이 흘렀다. 정 총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희가 도서관을 다 지어놓고 헌정을 못하고 있습니다. 10억원을 기부하시면 장로님 성함으로 헌정을 하겠습니다.”

속으로 ‘어이쿠’ 싶었다. 사업을 하며 많은 돈을 벌어 봤고 교회와 교단에서 수십, 수백억 단위 사업을 책임져 본 적도 있지만 역시 10억원은 큰 액수였다. 그러나 가진 것들을 잘 정리하면 안 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이미순 소망교회 권사) 동의도 없이 내 맘대로 우선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집에 가 아내에게 말하니 역시 그 자리에서 좋다고 했다. 그때 바로 기부해도 될 것을 2009년 4월에 하기로 약속하고 이미 할 일을 마친 양 홀가분한 기분으로 지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008년 말 금융 위기로 자산 가치가 폭락한 것이다.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약력=1939년 전북 임실 출생/연세대 경제대학원 최고경제인과정 수료/한일장신대 명예박사/전국장로회연합회장, 한국장로교복지재단 대표이사, 소망교회 장로 역임/현 한국장로신문사장, ㈜보창상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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