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박정태] 통합의 길을 묻는다 기사의 사진

새 밀레니엄을 맞을 때만 해도 우리는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도 있었지만 기대에 부풀었다. 그 후 10년이 쏜살같이 흘렀다. 이제 기축년이 저물고 경인년이 온다. 세계사적으로 새 천년의 첫 10년은 굴곡의 시대였다. 국제질서 재편 등 많은 변화와 함께 혹독한 현실을 경험했다. 공존공영을 모색했지만 테러와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10년은 갈등의 연속이었다.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이념, 지역, 계층, 세대 간 갈등이 사그라지기는커녕 증폭돼 왔다. 특히 보수와 진보 간 이념 충돌은 심각했다.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대한민국을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정치권은 물론 그 주변부가 이념 갈등을 확대 재생산했다. 이에 뒤질세라 좌·우 논객들이 끼어들었고 당파적 언론들도 거들었다. ‘잃어버린 10년’이 화두였다. 상대방은 적(敵)의 개념이었다. 그러니 극한대결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묵묵히 살아가는 서민들과는 아무 상관없이….

올 한해는 그 정점이었다. 연초 용산 참사는 갈등의 사회가 빚어낸 참극이었다. 노무현 김대중 전직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도 이념 대립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지역, 계층, 세대 간 갈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고질병인 지역 감정은 물론이거니와 외환위기 이후 더 심각해진 사회 양극화에 따른 계층 반목이 폭발했다. 부동산, 교육, 고용, 노사 등 거의 모든 정책에 전방위로 영향을 끼쳤다. 세종시 문제는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분출시켰다.

이러한 갈등을 치유하고자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가 최근 출범했다. 우리 사회의 소모적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통합에 기여하고자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각계 저명인사들이 사회통합위에 합류했다는 점에서 일말의 기대를 갖게 한다. 우려도 적지 않다. 현실성 있는 정책 대안이 나올 수 있느냐는 의문 때문이다. 위원회 그 자체의 한계로 정부의 들러리 노릇만 하는 게 아니냐는 회의적 시각도 많다.

물론 해법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 관용 배려 포용 화합 공존 등 추상적 언어로만 가득 찰 수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라, 다름을 인정하라,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져라 등의 교과서적 충고만 나열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한 위원의 지적대로 공허한 통합이라는 말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게 중요하다. 지난한 시대적 과제임에 틀림없으나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국민적 의식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그것도 작은 성과다.

지난 2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비움’의 정신을 강조했다. 바로 ‘나’를 버리라는 것이다. 나를 버리는 게 변화의 출발점이다. 개인사도 그렇지만 역사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나를 버려야 소통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는 아직 소통이 없다. 소통이 없으면 독단과 과욕을 낳는다. 이명박 정부의 소통 부재를 질책하는 이들도 많다. 위원회의 정책 대안을 집행해 사회통합을 이뤄나갈 주체는 바로 정부다. 현 정부의 인식 전환과 의지가 그만큼 중요하다.

무엇보다 정부가 갈등과 분열의 원인을 제거해줘야 한다. 1년간을 끌어온 용산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하는 이유다. 그 잘못이 누구에게 있든지 정부가 좀 더 귀를 기울이고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내년 G20 정상회의를 개최한다고 국격(國格)이 저절로 높아지지는 않는다. 이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언급한 따뜻한 자유주의, 성숙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때에야 비로소 국격이 올라간다. 사회통합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 길을 가려면 제(諸) 세력들이 나 자신을 버려야 한다. 권력욕, 소유욕, 명예욕을.

박정태 특집기획부장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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