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래창 (2) 금융위기 속에도 기부약속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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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한일장신대 도서관에 10억원을 기부키로 한 날은 다가오는데 2008년 말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자산이 반토막났다. 기부를 약속했을 때 몇몇 자산을 정리하면 무리 없이 마련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 모두 꼬여버렸다.

머릿속이 복잡한 가운데 아내에게 “어떻게 할까”라고 말을 꺼냈다. 지금까지 출장 갔다 비행기에서 사다주는 기념품 말고는 아내에게 변변한 선물 한번 해본 적 없다는 생각에 새삼 미안해졌다.

그러나 4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검소하고 남 섬기는 청교도적 가치관 아래 평생 살아온 아내는 역시 달랐다. “다른 일도 아니고 하나님께 약속한 일인데 어떻게든 해 보세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재산을 정리해 2009년 4월 17일 한일장신대 후원 계좌로 10억원을 입금했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어려운 논문이 통과되면 이런 기분일까.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고 칭찬해 주고 싶었다.

며칠 후인 21일 한일장신대에서 도서관 봉헌예식이 열렸다. 굳이 내 이름을 딸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정장복 총장은 아내(이미순 소망교회 권사) 이름에서 ‘미(美)’자를 따고 내 이름에서 ‘래(來)’를 따 ‘미래도서관’이라고 이름을 지어두었다. 그렇게 해서 ‘아름다운 내일을 소망하는 도서관’이라는 뜻이 되고, 또 미래는 내 손녀의 이름이기도 해서 반가웠다.

봉헌식 날 예기치 못한 선물이 있었다. 영국에 유학하던 딸이 불쑥 나타난 것이다. 임신한 몸에다 석사논문 마지막 과정으로 한창 바쁠 때라 일부러 연락을 안 했는데 제 오빠에게 듣고 열일 제쳐놓고 날아왔다는 것이다. ‘깜짝쇼라는 게 왜 있나 했더니 이런 즐거움 때문이구나’ 싶었다. 그 외에도 아내와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사위가 모두 기쁜 얼굴로 바라보는 가운데 봉헌식이 치러졌다.

그러고 보니 이 일은 한일장신대보다는 나에게 보탬 되는 일이었다. 자녀들에게 아버지로서 본을 보일 수 있었고, 어떻게 살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뜻을 전할 수 있는 산교육이 됐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정 총장에게 기부를 제안한 그 시기가 한일장신대에는 중대한 고비였다고 한다. 도서관과 예배당을 다 지어놓고 공사 대금을 지급 못해 쩔쩔매던 때였다. 정 총장이 “이 고비만 넘으면 될 텐데”하고 한탄하던 차에 내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후로 내가 기부한 금액보다 몇 배 많은 미지급금이 순조롭게 마련됐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나도 모르게 나를 사용하시는 일이 많았다.

또 내 능력과 관계없이 나를 사용하시는 일도 많았다. 특히 교회와 교단에서 맡은 직분 대부분은 자신 있어 맡은 것이 아니라 한사코 거절해도 억지로 떠맡겨진 것이었다. 솔직히 ‘누가 해도 안 될 일이라 나한테 돌아왔구나’ 한 적이 많았다.

2002년 대전신학교(현 대전신학대학교) 건축위원장을 맡았던 일도 그랬다. 어떤 인연으로 그 학교 이사를 몇 년간 맡고 있었는데 내가 참석 못한 이사회에서 나를 건축위원장으로 뽑았다. 학교가 1950년대 설립되고도 건물이 정부 기준을 통과 못해 4년제 대학 인가를 못 받고 있는 점은 나도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재정적으로 전혀 건축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연락 받았을 때 ‘또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건축위원회가 열려 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건축 비용은 70억원으로 추산되는데 가용 기금은 말 그대로 ‘제로’였다.

정리=황세원 기자 기자 hws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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