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절망을 바꾸는 믿음 기사의 사진

요한복음 11장 1∼4절

우리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절망은 죽음입니다. 누구나 한번은 반드시 죽게 되고 죽음 앞에서 무기력한 절망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죽음의 절망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꾼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나사로의 가정입니다. 나사로의 가정에 주님은 믿음을 요구하셨고, 그 믿음을 통해 절망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절망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꾸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첫째,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도 병들 수 있습니다. 본문 1∼3절에 하나님의 자녀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앞에 시련과 고난이 올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 죄사함을 받아 주님의 큰 사랑을 경험한 마리아는 후에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 자신의 모든 미래를 주님께 내어 드렸습니다. 또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이 여인이 행한 일을 전하여 기념하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의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는 성도들에게도 어려운 일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이 다 징계와 재앙은 아닙니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입니다. 4절에 주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죽을 병을 주시지 않습니다. 나사로를 통하여 영광을 얻으시려고 주신 ‘영광 병’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 속에 주시는 시련들은 재앙으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주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하는데 우리 앞에 감당할 수 없는 문제, 절망이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를 해도 응답되지 않고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환경과 문제가 여러분을 가로막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복 주시려는 일임을 믿고 믿음을 주장해야 할 때입니다.

셋째, 주님께서는 지체함을 기뻐하셨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주님이 일부러 지체하셨습니다(요 11:5∼6).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지체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지체하심은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큰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지체하신 것입니다.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요 11:15)

넷째,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마르다의 고백처럼 “주께서 여기 계셨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 11:21)라는 과거적 신앙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 11:40)고 하신 것처럼 불가능한 것을 믿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죽은 지 사흘이 되어 썩어서 냄새나는 무덤의 돌을 믿음으로 굴려내시기 바랍니다.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죽음이라는 가장 큰 절망이 있을 때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면 능치 못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믿음을 가질 때 화를 복으로, 악을 선으로 바꾸는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더욱 큰 믿음을 가지고 절망을 극복하는 현재적 신앙을 가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광종 목사 <인천 성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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