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래창 (3) 교계 도움으로 대전신학대학교 설립

[역경의 열매] 박래창 (3) 교계 도움으로 대전신학대학교 설립 기사의 사진

2002년 1월 대전신학교 본관 건축을 위한 첫 건축위원회가 열렸다. “지난 2년간 학생, 교직원들과 함께 눈물로 특별 새벽기도회를 해 왔습니다. 어떻게든 올해 안에 건축을 시작해 2년 후인 2004년에 완공하고, 그 안에 기금을 모으겠습니다.” 문성모 총장이 열성적으로 설명했지만 건축위원을 맡은 다른 이사들은 내 얼굴만 바라봤다.

당시는 IMF 경제위기 후유증으로 모금이 잘 될 때가 아니었다. 충청도를 비롯한 중부권 교계의 온건한 분위기로 볼 때도 2년 만에 70억을 모은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 번 해 보십시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말하자 총장 얼굴은 밝아지고 이사들 얼굴엔 걱정이 떠올랐다. “저 자신은 건축에 문외한이지만 교회 건축부장을 오래 해서 그 분야 전문가인 장로 집사님들을 좀 압니다. 당장 설계를 시작하고 비용을 정확히 내 봅시다.”

그리고 내가 먼저 건축비를 얼마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그제야 이사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문 총장은 그 날부터 전국을 다니며 모금 운동을 벌였다.

한편 충청권의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 목회자들과 장로회, 남녀 선교회 등 대표들을 허름한 본관 건물로 불러 기도회를 열기로 했다. 모금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 가기 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제는 될 일도 지레 안 된다고 여길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어떻게 바꾸느냐였다. 사실 지역 교계가 똘똘 뭉치고 교단 전체가 도와주면 50년 역사의 신학교 본관 하나 못 지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부터가 ‘당연히 될 일이다’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에게 나눠줄 기념품을 준비했다.

사실 형님이 하시는 공장에서 얻어온 스카프를 포장한 것이라 비용은 안 들었지만 어쨌든 선물상자를 가득 안고 기도회에 들어갔다. 총장이 “서울에서 섬유사업을 크게 하시는 소망교회 박래창 장로십니다”라고 소개했을 때 굳이 겸양 떨지 않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그랬더니 ‘과연 될까’였던 표정들이 서서히 ‘되긴 되려나보다’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곧 단체별, 교회별로 3000만원, 5000만원씩 기부 금액을 작정했다.

그 후로는 순풍에 돛 단 듯이 일이 되어갔다. 건축비용은 80억여 원으로 늘었지만 완공까지 80% 모금됐고 지금은 거의 해결됐다고 들었다. 이후 학교는 건물이 교육과학기술부 기준에 합격해 4년제 대학으로 인가받고 올해 초 대전신학대학교라는 이름으로 새출발했다. 발이 닳도록 전국을 뛴 문 총장의 공로가 대부분이지만 나도 중요한 순간에 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뿌듯함이 있다.

소망교회에서 장로로 28년 일하다 보니 교단 총회와 범 기독교 사업들에서 귀한 직분을 많이 맡았다. 대부분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일들이었지만 거의 성공리에 마쳐졌다. 내 능력은 별로 들어가지 않았다. 거절 못하는 성격 탓으로 일단 맡아 놓고 쩔쩔 매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진짜 전문가들을 속속 내주셨다. 그리고 나보다 더 열성적으로 일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쓰신 각본과 그분이 캐스팅한 배우로 모든 일이 되어지도록 나는 연출을 하기만 하면 됐다.

그 중 지금 돌아봐도 기막힌 한 편의 연극이다 싶은 일이 있다. 1996년 정근모 당시 과학기술부 장관으로부터 전화가 오면서 시작된다. 나야 정 장관을 알지만 그분은 나를 알 리가 없는데 대뜸 나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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