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용 칼럼] 행복을 찾아 헤매는 나그네 기사의 사진

"평생을 자녀 돌보기에만 바치면 우리 인생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서울에 기습 폭설이 쏟아진 다음 날 오후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눈 산책을 나갔다. 출렁이며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2009년 한 해를, 반사되는 눈 위의 발자국을 돌아보며 2010년을 맞는 설렘을 느꼈다. 사무실로 돌아와 신문을 펼치니 1000명의 말기 환자들이 말하는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책 광고가 눈길을 끈다.

‘그들은 말한다, 너무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우리는 한없이 참고 또 참으며 비로소 끝에 이르러서야 자신을 속이며 살아왔다는 걸 깨닫는다(오츠 슈이치).’ 권력과 명예 돈에 대한 강박관념,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말로 들린다.

영·미의 두 학자가 미국의 50개주 주민들의 행복감을 조사한 결과가 열흘 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렸다. 1위는 루이지애나였고 부의 상징인 뉴욕은 놀랍게도 꼴찌였다. 주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기후, 주택 가격, 인구 밀집도 등과 정비례했다. 서울도 예외는 아닐 듯하다.

7개 도시 거부들의 삶을 추적한 정신분석서 ‘어플루엔자’(올리버 제임스)는 뉴욕의 부자병 바이러스가 어떻게 세계에 전파되고, 부와 소비를 향한 탐욕이 얼마나 많은 질병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자기보다 더 부자와 비교하는 스트레스, 필요와 욕구의 분간이 사라진 부자들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가 않았다. 영국의 부자들 중 4분의 1은 정신질환을 겪고 있고 4분의 1은 경계선상이라고 한다. 타이거 우즈도 같은 예다. 부자병은 중국까지 번져 광둥성의 한 대학에선 ‘푸얼다이(富2代)’들이 황제라도 된 듯 ‘청순하고 아름다운 캠퍼스 퀸을 찾는다’는 신부 간택 팸플릿까지 등장해 물의를 빚었다.

한국은 감성적인 국민성 덕분인지 부자병이 만연한 것 같지는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속도전으로 극복하고 원전 수출이라는 대히트로 국가브랜드가 크게 향상됐다. “정말 천운이자 국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성장의 과실은 일부 대기업에나 해당될 뿐 중소기업과 서민생활은 한창 시리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년의 역점 과제로 ‘일자리 문제, 교육 문제’를 꼽았다.

우리사회 역시 성취 만능, 승자 독식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사교육을 못 시키면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없고, 대기업 취업도 어렵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는 더 어렵다. 기득권자들은 중소기업 취업이 어떠냐고 반문하지만 뻔한 ‘사회적 거짓말’일 뿐이다.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안 낳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가정 만들기와 부모 됨의 포기는 국가적 재앙이 되고 있다. 정부와 대기업이 중소기업 육성과 취업네크워크 구축에 국운을 걸어야 할 이유다.

아기가 태어나 사회에 편입되도록 도와주는 데는 25년이 걸린다. 대략 대학졸업까지다. 미국 같은 선진국은 고교 졸업과 함께 자립하는 게 당연시되지만 한국은 대학 졸업은 물론, 이제는 직장 생활, 결혼 후까지 부모가 돌봐야 하는 ‘헬리콥터 맘’이 일반화되고 있다. 할아버지의 부가 손자의 계층을 좌우한다는 것도 상식이 됐다.

생각을 바꿔보는 것도 방법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사어(死語)가 됐다지만 예외도 얼마든지 있다. 고향 시골 마을의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 중 카이스트에 가고, 미국 NASA의 연구원이 된 경우 등 적잖다. 인터넷 혁명으로 웬만한 시골의 교육여건도 이전에 비해서는 월등하게 좋아졌다. 강남 유명 강사의 강의를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고 IPTV도 대단한 교육기자재다. 시골 교사들의 헌신으로 사교육을 이기는 학교도 늘고 있다.

흐르는 세월 속에 잠시 멈춰, 주변을 돌아 볼 시간이다. 평생을 자녀, 손자 돌보기에만 바친다면 우리 인생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욕심을 낮추면 삶은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행복을 찾아 헤매는 나그네와 같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다뷻는 한 성직자의 말이 와닿는다. 행복한 삶이란 마음을 비우고 겸손한 자세로, 공동체를 돌아보며 사는 삶일 것이다.

수석논설위원 hyle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