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길-김순정] 임성남 선생의 걸레질 기사의 사진

요즘 계절 학기에 ‘발레와 체형교정’ 수업을 매일 아침 10시부터 진행하고 있다. 베일 듯 차가운 새벽공기를 가르며 발레 연습을 가던 지난날의 기억이나, 잠겨 있는 문을 홀로 열고 들어가 어두운 연습실의 불을 켜는 순간의 설렘은 지금도 변함없다.

빈 무용실을 보고 있으면 오래 전 발레 연습실에 물걸레질을 하시던 임성남(1929∼2002) 초대 국립발레단장이 떠오른다. 뜬금없이 청소 이야기를 하는 건, 지난 학기 첫 시간에 한 학생이 미끄러져 몇 달간 다리에 깁스를 했기 때문이다. 무용실에서 여러 강좌가 있어 발레 수업만을 위해 물걸레를 쓸 수 없기에 그런 사고가 났다. 다행히 미대 도자기실에 따뜻한 물이 나와 걸레에 물을 묻혀 닦으니 바닥의 왁스를 조금은 벗길 수 있었다. 히터에서 나오는 열로 얼마 안 가 물기가 말라버렸지만 한동안은 쓸 만했기에 수업 중간 중간에 닦기 위해 걸레를 얻어왔다.

중학생 시절 연습실에 가면 임성남 선생님은 늘 청소를 하고 계셨다. 그것도 아주 기분이 좋으셔서 카르멘의 투우사 노래 곡조에 맞추어 “거지나 발싸개 거지나 발싸개∼” 노래까지 부르시면서.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선생님의 모습이 연극무대의 멋진 배우 같다고 느꼈다. 우리가 바(Barre)에 다리를 올려 놓고 몸을 풀고 있을 때면 선생님은 언제나 바닥을 대걸레로 문지르고 다니셨다. 어찌나 즐기시던지 선생님들은 다 청소를 좋아하시는 줄만 알았다. “제가 할게요” 했더니 “아니에요. 순정은 계속 연습하세요”하시며 걸레를 놓지 않으셨다.

지금 생각하니 어린 학생들이 혹시라도 미끄러져 다칠까봐 선생님은 그렇게 부지런히 걸레질을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조개탄 난로가 있던 작고 허름한 연습실에서도 넘어지거나 다치는 일 없이 순조롭게 발레리나의 길을 걷게 되었다. ‘스승의 배려 덕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서울의 한 공고 교사로 재직 중인 대학 동창은 아침에 출석 부르고 나면 학생들이 학교 밖으로 사라져 찾으러 다니는 게 일이라고 했다. 그녀는 이런 이야기도 했다. 오래 전 하도 자주 아파 늘 시험을 앞두고 포기하곤 했다. 한번은 중요한 시험을 치를 수 없을 정도로 아팠는데, 어머니가 웃으며 시험은 보지 말고 그냥 시험지만 보고 오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니 거짓말같이 어지럼증과 구토 증상이 없어지고 기적처럼 시험 문제도 아는 것만 나왔다고 한다.

자신이 교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프고 힘든 아이들의 심정을 내 마음처럼 잘 알고 그들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약하고 보잘것 없던 나도 이렇게 선생님이 되었잖니. 너도 할 수 있어. 내가 도와줄게”라며 그녀는 아이들을 품에 안았다. 그녀의 어머니가 한숨을 쉬며 눈물만 흘리거나, 등을 떠밀며 최선을 다하라고 닦달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교육은 치료라고 역설했던 루돌프 슈타이너의 통찰을 굳이 떠올릴 필요도 없이, 그녀의 어머니는 실천하는 훌륭한 교육자였다.

진정한 교육에서는 지식보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만나는 것이 우선이다. 세상 만물은 서로 기대고 의지하면서 존재한다. 기대고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은 의기소침해지고 결국 자포자기 심정이 된다. 나 역시 긴 절망과 좌절의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좋은 선생님들의 따뜻한 눈빛과 진심 어린 관심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이런 진정한 교육이 필요한 때 아닌가.



김순정(성신여대 교수·스포츠레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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