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래창 (4) 1996년 중국 선교 중책 맡아 당혹

[역경의 열매] 박래창 (4) 1996년 중국 선교 중책 맡아 당혹 기사의 사진

1996년 2월쯤, 회사 사무실에 있는데 정근모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중국에서 부흥회를 열고자 하는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일이 반쯤 되었는데 나머지 일을 소망교회가 맡아줬으면 해서 그러니 저와 한번 만나 이야기를 하시지요.”

당시는 중국과 수교한 지 4년밖에 안 돼 중국에 출장 가기도 힘들 때였다. 하물며 부흥회라니? 또 정 장관이 개인적으로 만난 일도 없는 나에게 직접 전화한 것도 의아했다. 당시 내가 소망교회 북방선교부장을 맡고 있긴 했지만 그런 일이면 곽선희 목사님과 직접 상의해야 할 터였다.

여하튼 만나자는 청을 거절하기 어려워 그분이 인도하시는 ‘나라를 위한 기도회’로 찾아갔다. 장로 동기이면서 당시 고려여행사 사장이었던 유민철 장로와 함께 갔다. 전문가와 동석해야 거절하기 쉬울 것 같아서였다.

기도회 후에 셋이 만나 설명을 들은 즉, 중국과 인맥이 닿는 재미교포 이혜자 선교사라는 분이 중국 정부 부처 중 한 곳과 접촉, 베이징에서 4박5일간 부흥회를 열기로 계약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산의 어느 교회 여성 집사님들이 몇 년간 북방 선교를 위해 기도하며 모은 5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쪽에서는 1만여 명의 인원을 모아주고, 우리는 400여명을 인솔하고 가서 베이징에서 숙식하고 행사 개최 비용으로 총 40만 달러를 주는 조건이라고 했다. 계약서에 따르면 앞으로 40여일 안에 부흥회를 열어야 했다.

내가 바로 판단해 봐도 성사될 리 만무한 일이었다. 유 장로 쪽을 바라보니 눈을 감고 고개를 슬쩍 흔들었다.

“장관님, 그런 이야기를 왜 저에게 하시는 겁니까?”

“이 선교사가 대형 교회들과 기독실업인 등 찾아가볼 만한 데는 다 가 봤는데 모두가 중국은 믿을 수 없다, 사기 당한 것이 아니냐 하면서 받아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랬겠지요’ 하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겨우 삼켰다.

“모자라는 35만 달러를 마련하고 400명의 방중단을 꾸리는 일을 누군가 해줘야 하는데, 소망교회라면 가능할 것 같아요. 장로님이 곽 목사님께 말씀을 좀 전해 주시지요.”

이렇게 말하는데 그 자리에서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어 일단 말을 전해는 보겠다며 일어났다. 곽 목사님 얘기를 듣고 다시 와서

“저희로서도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라고 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곽 목사님께 말을 꺼내자 “중국 선교는 최고위층 엘리트와 접촉해서 돌파구를 찾는 게 중요하다”면서 “한번 해보지” 하고 선뜻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는 훌쩍 해외 선교를 떠나버리셨다.

유 장로와 나는 손을 맞잡고 “큰일났다”고 중얼거렸다. 그야말로 ‘불가능한 임무’가 떨어진 것이다. 다행히 우리 교회에는 국제회의 전문가 등 중국 사정에 밝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고개를 가로젓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얻은 정보는 당시 중국의 정부 부처들이 산하에 여행사를 두고 이런 식으로 대규모 방중단을 유치한 뒤 거기서 받은 돈을 부처 비용으로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사님 말씀대로 이 기회를 이용해서 중국에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전해보자.’ 이렇게 생각한 나는 본격적으로 일을 추진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들이 계속 생겼다.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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