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아바타의 비극 기사의 사진

요한계시록 3장 1절

사람들에게 두 가지 묘한 양가감정의 욕구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표현 욕구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반대로 자신을 숨기고 싶은 은폐 욕구입니다. 이 두 가지 양면성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것이 최근 우리의 인터넷 문화 속에 은근히 자리잡게 된 ‘아바타(Avatar)’입니다. 강렬한 참여 욕구를 지니면서도, 한 발 물러나 자기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익명의 문화가 만들어낸 허상(image)입니다.

원래 아바타는 분신(分身), 화신(化身)을 뜻하는 산스크리트 힌디어로, 고대 인도에선 땅으로 내려온 신의 화신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3차원이나 가상 현실 게임 또는 웹에서의 채팅 등에서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그래픽 아이콘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소재로 한 최근의 영화 ‘아바타’가 그것입니다.

사실 영화 ‘아바타’는 뉴에이지적 요소가 다분히 깔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이제 인간은 자신의 신체적 한계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본래의 자기보다 훨씬 강한 ‘또 하나의 자신’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자신의 정신(spirit)을 불어넣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만듭니다. 실제로 눈에 보이는 아바타는 허상이고, 그 실체는 조종관 안에 누워 있는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죽으면 아바타도 죽습니다. 사실 눈에 보이는 아바타는 거기에 붙여진 이름뿐이지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끝 장면이 아주 무섭습니다. 실제 주인공은 영원한 죽음의 세계로 떠나보내고, 대신 그 주인공의 대리자였던 아바타가 눈을 뜨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장면이 아바타의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체가 없어진 허상과 이름뿐인 존재….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고후 4:18)인데, 이제 보이지 않는 실체는 영원히 사라지고 보이는 허상만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참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바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인간처럼 이 땅에 하나님을 대신하는 형상으로 나타나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된 우리들을 보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합니다. 또한 이런 면에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바타와도 같다고 생각됩니다.

분명한 것은 아바타의 존재는 그 실체의 존재 여부로 인해 좌우된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롬 8:9)

우리는 육의 장막을 입고 있지만 우리 안에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성령의 사람이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야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2009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동안 혹시라도 우리 한국교회가, 우리들의 행위가 오늘의 본문인 요한계시록의 사데교회처럼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 주님으로부터 책망 받지 않았는지 그리고 이 사회로부터 비난 받지 않았는지 두렵습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아바타의 허상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을 세상에 떳떳하게 내놓고 주님께서 주시는 ‘진리의 자유’를 맛보게 되기를 원합니다.

조규남 목사 (행복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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