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사종] 상실을 보내고 희망을 맞자 기사의 사진

또 한 해를 보낸다. 우리가 떠나보낸 그 많은 해들이 그러하듯 2009년 또한 다사다난했다. 사건이 없고(多事) 어려움이 없다면(多難) 인간사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2009년은 유독 마음속에 상흔이 많이 남는 해로 기억된다. 뭔가 잃어버린 것이 많고, 정리해야 할 것이 많은 큰 상실이 우리의 마음을 끊임없이 옥죄고 있다.

대한민국의 근대사는 극단의 성장과 극단의 좌절을 경험하면서 성장 중심과 생산성 중심 사회의 소용돌이를 건너왔다. 물질적으로 풍요해진 사회는 모든 가치를 물적 욕망의 패러다임에 맞추며 뛰게 했다. 4만 달러의 고지를 달성하면 곧 10만 달러의 고지가 눈앞에 어른거릴 수밖에 없는 “4만 달러 국민성공시대”의 외침이 전혀 낯설지 않은 세상은 성장의 달콤한 열매를 따는 사람들의 환희 뒤편에 숱한 소외와 열패감에 떠는 사람들을 키워왔다.

삶의 목표 재설정케 한 2009년

이 복잡미묘한 버블과 상실의 에너지, 성장사회의 흥분된 열정에 뒤틀린 사회는 촛불시위도 만들어냈고, 막장드라마 열풍도 만들어냈다. 그 소용돌이의 끝은 역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이 아니었나 싶다. ‘바보 김수환’의 이니셜이 상징해주듯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이웃에 대한 헌신과 사랑으로 살다간 ‘바보’(?)를 향해 온 국민은 눈물을 흘렸다. 그건 물질적 성공시대를 향해 달려온 자신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향해 흘린 회한의 눈물이었다.

반성의 눈물은 문화계의 이변을 통해 여기저기 목도됐다. 팔순의 시골농부와 40살 먹은 늙은 소의 잔잔한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가 300여만명의 국민들을 가슴 저리게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치매 걸린 엄마를 지하철에서 잃어버리고 겪는 신산한 가족사를 담은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100만 부 넘게 판매된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할까.

깻잎조차도 생산성 향상을 위해 잠 안 재우고 키우는 성장사회에서 신경과민된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아왔다. 그 상처로부터 치유받기를 갈망한 것이 아니었을까. 또한 근대사의 격난기를 살아오면서 우리의 순수한 삶에 대한 바람은 얼마나 오염됐는가. 그 오염으로부터 정화되기를 바랐고, 현기증 나는 세상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다른 의미에서 보면 경제가 하산길에 이르던 올 해는 물질적 생산성 만능사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 잊고 살았던 ‘무엇이 진정으로 성공한 삶이며 행복한 삶인지’에 대한 가치를 일깨워준 시기가 아니었는가 싶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시인의 두 줄짜리 시의 행간에서 읽혀지듯 2009년은 분주해서 보지 못했던 자기 자신과 주변을 조금씩 돌아보게 한 절호의 시기였고 우리의 삶의 목표를 재설정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를 만들 수 있었던 해였다.

그러나 상처를 아물리고 자신을 정화하며 구원의 삶을 향유할 여유도 잠시뿐이었고 강호순 조두순 사건, 용산참사, 신종플루 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한바탕 신음소리를 냈다.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정치판의 이전투구 속에 이제 막 마음의 눈으로 연 새 삶의 꿈과 비전은 상실의 커튼 속에 갇혀버렸다.

새해엔 영혼을 더 숙성시켜야

2010년 새해가 동터 오르고 있다. 반성을 잃어버린 사회는 미래가 없다. 세계도 마구잡이로 경쟁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아닌 더불어 잘 사는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그동안 이룩한 번영 속에서 잃어버린 인간다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제자리에 놓는 일은 2009년이 남긴 숙제다.

새해의 희망은 이 잃어버렸던 가치를 온전하게 정리해서 제자리에 놓는 일에서부터 찾자. 선진국을 향한 진정한 성장은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우리의 영혼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고 숙성시켜 나가는 일일 것이다. 4만 달러 국민성공시대가 놓친 ‘바보(?)도 성공하는 시대’를 만들어 나갈 때 나라도 편안하고 우리의 삶도 행복해지지 않을까 한다.



홍사종 미래상상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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