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또 다른 골품제-‘외모지상주의’ 원인과 대안] ‘착한 외모’는 스펙?… 이력서 사진부터 떼야 기사의 사진

외모지상주의는 21세기적인 현상이다. 외모는 인터넷과 모바일 서비스로 영상 매체가 다양화되면서 2000년 이후 중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특히 명분이나 체면처럼 외적인 요소를 중시하는 전통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경쟁사회가 주는 압박이 더해지면서 외모지상주의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외모지상주의는 문화가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외모차별주의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상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풍토라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성형·명품·연예인 스타일=서울 압구정역 반경 1㎞ 안에는 300여 곳의 성형외과가 밀집해 있다. 고개만 살짝 돌려도 성형외과 간판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압구정동에서 성형외과를 가려면 몇 주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 예약하지 않고 병원을 방문하면 1시간 이상 기다리기 일쑤다. 우리나라에서 성형은 최근 들어 어느 때보다 익숙한 일이 됐다.

‘3초백·5초백·7초백’이란 말이 있다. 거리를 걷다 보면 3초에 한 번씩 보인다는 루이뷔통 가방, 5초마다 들고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구찌 가방, 7초만 지나면 또 다시 눈에 띄는 에트로 가방을 일컫는 말이다. 명품 열풍을 꼬집는 이 같은 표현이 나온 지도 벌써 몇 년이 흘렀다.

우리나라의 유행은 미디어가 주도한다. 이를테면 검정색, 미니스커트, 단발머리가 유행일지라도 ‘가수 ○○○이 즐겨 입는 옷 색깔’ ‘드라마 주인공 ○○○이 입고 나온 옷’ ‘연예인 ○○○의 헤어스타일’로 기억된다. 면접을 앞둔 취업 준비생이 대기업 사원으로 등장하는 탤런트처럼 꾸미기 위해 고가 브랜드의 옷을 사고 머리를 하는 데 100만원이 넘는 돈을 들이는 일은 예사가 됐다. 연예인을 따라 유행이 흐른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속도나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다.

◇스펙이 미래를 좌우하고 미디어가 일상을 지배하는 사회=외모가 경쟁력이라는 말은 상식이다. 취업난이 날로 심각해지면서 보기 좋은 외모는 이제 반드시 갖춰야 할 ‘스펙(Specification·이력서에 쓰는 영어 점수 등의 자격)’이 됐다.

이력서 왼쪽 맨 위에 붙여야 하는 사진은 자격증 못지않게 중요한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스펙 하나를 건지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젊은이들에게 외모 꾸미기는 취업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전술이다. 이렇다보니 취업난이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이다.

취업에서 좋은 외모가 미치는 영향이 과대평가됐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외모 때문에 면접에서 혜택을 받은 사례가 유난히 드러난 것일 뿐 실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은 증명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외모가 스펙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TV, 인터넷, 모바일 서비스 등 영상 매체의 발달도 외모지상주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각종 영상 매체가 ‘아름다운 것은 선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열등하다’는 선입견을 불어넣고, 나아가 확대재생산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특히 심하다는 것도 공통된 의견이다. 우리나라 영상 매체는 스포츠 중계를 하면서도 선수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런 방식의 방송이 거듭되면서 지나치게 왜곡된 이미지가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부 교수는 “옛날에는 아이들에게 가장 예쁜 사람을 꼽아보라면 ‘엄마’라고 대답했지만 요즘은 ‘김태희’라고 말한다”며 “이미지를 즉각 전달하는 영상 매체의 발달로 상상력이 결여되고 미(美)가 획일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외모지상주의를 떨쳐내려면=외모지상주의는 다양한 것을 제각각 아름답게 여기는 것을 막는다. 영상 매체가 가리키는 획일적이고 규격화된 것만을 아름답고 선하다고 판단하게 만든다. 이런 획일성은 차별이고 폭력이다. 외모지상주의가 가진 문제는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는 사회 곳곳의 외모지상주의적 요소를 제거해 나가야 바꿀 수 있다고 제언한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법적으로 제재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력서에서 사진을 요구한 기업이 소송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예는 외모지상주의를 단순히 문화적인 문제로 보고 인식 변화만 촉구해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때문에 외모지상주의 철폐에 관심을 기울이는 학자들은 이력서에 반드시 사진을 붙이도록 하는 것, 취업 시 신체 조건에 따라 지원을 제한하는 것, 아르바이트생 한 명을 뽑을 때도 ‘용모 단정’을 내거는 것 등 외모지상주의에서 나온 온갖 조건들을 고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물의 껍데기만 보고 본질로 여기는 것은 유아적인 사고”라며 “이 같은 사고방식과 외모지상주의 문화에서 벗어나려면 인식 전환이 일어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외모로 차별을 못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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