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래창 (5) 1996년 힘들게 베이징 부흥회 참석했지만…

[역경의 열매] 박래창 (5) 1996년 힘들게 베이징 부흥회 참석했지만… 기사의 사진

1996년 중국 베이징 중심부에 1만여 명을 모아놓고 역사적 부흥회를 여는 중차대한 임무가 나에게 떨어졌다. 소망교회 북방선교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긴 했어도 그런 일을 맡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행히 한 차례 날짜가 연기됐지만 7월로 예정된 방중 날짜는 숨이 차도록 닥쳐왔다.

고비는 수도 없이 찾아왔다. 일단 교회의 당회가 반대해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다. 또 중도금 명목으로 1억원을 송금해야 했다. 그런데 중국에 돈을 송금하는 일이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일반적 경로로는 한 달도 더 걸린다고 했다.

교회 내 장로와 집사 중 은행원을 수소문하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마침 중국 은행에 파견 나간 이가 있었다. 그에게 전화하니 “제가 여기서 전달하겠으니 저희 은행 본점으로 돈을 보내주십시오”라고 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제야 생각하니 돈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송금일까지 5일 남은 시점이었다.

집에 들어가 한숨을 내쉬고 있자니 아내가 “무슨 일이세요?” 했다.

“당신 돈 좀 가진 것 있소?”

“글쎄요. 참, 모레 만기가 되는 적금이 있는데 1억원이에요.”

‘하나님께서 역시 길을 만들어 놓으셨구나!’ 싶었다. 아내가 오랜 기간 애면글면 부어 온 적금인 것을 알았지만 다짜고짜 “그 돈을 좀 씁시다”고 했다. 아내는 사정을 듣더니 고맙게도 선뜻 “그러세요” 했다.

그렇게 중도금은 해결됐는데, 또 일이 터졌다. 순조롭게 모집돼 한때 600명에 이르렀던 방중단 중 무려 400여 명이 갑자기 취소를 한 것이다. 중국 현지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퍼진 것이 원인이었다. 나와 유민철 장로 등 실무자들은 백방으로 뛰어 어찌어찌 412명까지 다시 채웠다.

1996년 7월 10일, 정근모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을 비롯해 정인용 홍재형 전 부총리, 김선홍 당시 기아 회장, 최성규 인천순복음교회 목사 등 쟁쟁한 인사들이 포함된 방북단은 겨우 베이징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3시간여 비행 동안 든 생각은 “만일 아무도 마중 나와 있지 않으면 이 인원을 끌고 어디로 갈지 전혀 모른다”는 것과 “나머지 1억8000만원을 현지에서 전달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아무 대책이 없다”는 것이었다.

둘 다 기막힐 노릇이었지만 나로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알아서 해 주시겠지 하며 눈을 감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공항에 도착하니 입이 떡 벌어질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벤츠 5대와 고급 관광버스 10여 대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타자 공안 오토바이가 에스코트하는 가운데 베이징 주요 도로를 달렸다. 창밖을 보니 도로를 통제했는지 다른 차들이 보이지 않았다.

일행은 베이징에서 최고급이라는 쉐라톤 호텔로 모셔졌다. 공식 일정은 다음 날 시작이라 했다. 아직까지 장소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쳐 현지 진행자에게 물어보니 “내일 가 보시면 압니다”라고만 했다.

공식 일정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문제가 생겼다. 행사 첫날 정 장관이 한국을 대표하는 축사를 하고 곽선희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기로 했는데, 그 원고를 미리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곽 목사님의 설교 원고 곳곳에 빨간 줄이 그어져서 돌아왔다. 하나님, 예수님, 십자가, 교회, 은총 등 기독교적 단어들을 모두 종교색이 없는 두루뭉술한 것으로 바꾸라고 했다.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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