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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식물이야기] 토종 호랑가시나무

[고규홍의 식물이야기] 토종 호랑가시나무 기사의 사진

호랑이해가 밝았다. 나무 가운데 호랑이를 상징하는 나무가 있다. 육각형 방패처럼 생긴 잎의 가장자리에 돋친 억센 가시에서 호랑이의 날카로운 발톱을 떠올리게 돼 아예 나무 이름에 ‘호랑이’를 붙인 호랑가시나무다. 예수의 가시 면류관을 만들 때 쓰이기도 했던 나무다. 이 나무의 가지는 호랑이 등을 긁기에도 맞춤하다 해서 일부 지방에서는 호랑이등긁개나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호랑가시나무의 여러 품종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것이 있다. 전남 완도 지역에서만 자라는 나무여서 ‘완도호랑가시’라는 이름으로 세계 식물학계에 당당히 ‘완도’라는 작은 섬을 알린 자랑스러운 식물이다.

완도호랑가시는 호랑가시나무와 감탕나무가 자연 상태에서 혼인을 이뤄 만들어진 나무다. 이 나무는 천리포수목원 설립자인 고(故) 민병갈 원장이 처음 발견, 우리 학계의 검증을 거쳐 세계 학회에 공식 등록했다.

짙은 초록빛을 간직한 채 겨울을 나는 완도호랑가시의 잎은 서양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호랑가시나무와 달리 둥글둥글할 뿐 아니라, 두께도 얇은 편이다. 게다가 잎 가장자리에 돋아난 가시는 날카롭지도 억세지도 않다. 호랑가시나무의 잎에 손을 대면 순간적으로 아픔을 느낄 정도로 따갑지만, 완도호랑가시의 가시는 가시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다. 때를 가리지 않고 으르렁대기만 하는 가납사니의 수다함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얼핏 봐서는 호랑가시나무와 전혀 다른 식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흰 눈 소복이 쌓인 한겨울에도 초록빛을 잃지 않는 혁질(革質)의 잎사귀나 잎겨드랑이에 조롱조롱 맺히는 새빨간 열매는 영락없는 호랑가시나무다. 부드러워 보이지만, 엄동설한의 매운 바람에 맞서는 강인한 생명력만큼은 여느 상록성 나무 못지않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우리 땅에 자리 잡기 위해서 토종 식물이 갖춰야 할 조건이지 싶다. 돌아보면 대개의 우리 식물들은 완도호랑가시처럼 온유한 인상을 가졌다. 지나치게 크지 않게 자라며 꽃송이도 작다.

꼭 필요한 때가 아니라면 발톱을 세우지 않는 호랑이처럼 질긴 생명력을 갖추었어도 겉모습만큼은 부드럽게 드러내는 게 우리 토종 식물이 숲에 어울려 살아가는 방식이다. 다소곳이 가시를 감추고 혹한의 추위를 버텨내는 완도호랑가시의 외유내강이 절실한 새해 아침이다.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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