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래창 (7) ‘행사’ 참석자 헌금 쇄도… 북방선교 기틀 마련

[역경의 열매] 박래창 (7) ‘행사’ 참석자 헌금 쇄도… 북방선교 기틀 마련 기사의 사진

1996년 7월 중국에서의 ‘부흥회 아닌 부흥회’는 그 후 중국 선교의 소중한 발판이 됐다. 지금 돌아보면 그곳에서의 사건 하나하나가 의미 있었고 하나님의 의지 안에서 놀랍게 진행됐다. 내가 특별히 감사하는 것은 그렇게 중대한 역사가 이뤄지는 가운데서 하나님은 내 개인적 고충도 굽어살피셨다는 것이다.

4박5일 일정 동안 우리 일행은 새벽마다 호텔의 한 공간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하루는 예배가 끝난 후 류태영 장로가 “여러분, 박래창 장로가 이번 행사의 계약 중도금으로 1억원을 내서 우리가 여기 올 수 있었던 것을 아십니까?”라고 광고했다. 나조차도 그 사실은커녕 행사가 끝남과 동시에 중국 측에 전달해야 했던 1억8000만원에 대해서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터라 깜짝 놀랐다.

그런데 이 말에 참석자들이 하나 둘씩 가져온 돈을 내놓고 또 앞으로 헌금하겠노라 작정하기 시작했다. 그 액수가 필요한 금액을 채우고도 1억원이 남을 만큼이었다. 남은 1억원은 이후 소망교회가 수년간 진행한 중국 통신학교 사역의 기반이 됐다. 중국 오지의 가정교회들에 중국어로 번역된 목회 자료를 우편으로 보내줘서 교육시키는 사역이었다.

행사를 다 마치고 인민대회당을 나올 때 한 집사님이 나에게 “장로님, 대단하십니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 순간 뿌듯하면서도 면구한 심정이었다. 정말 내가 대단하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이 일을 맡기지 않으셨으리라,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소망교회 북방선교부장으로서 본격적으로 북방선교에 매진했다. 류태영 장로, 옥수수 품종을 개량한 김순권 박사, 감자 품종을 개량한 정혁 박사와 함께 96년부터 7년간 중국 오지 20여 곳을 구석구석 다니며 빈농들을 도왔다. 북한 고아원 건립을 도운 적도 있었다. 그에 앞서 90년쯤에 고려여행사 사장이었던 유민철 장로와 함께 선교 미개척지였던 몽골에 처음 가봤던 일은 나중에 돌아보니 몽골 선교의 첫 돌파구가 됐다. 당시 동행했던 안교석 목사로 인해 몽골 선교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이런 일들에 관계할 수 있었나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 내가 큰일을 했다기보다는 하나님이 하시는 큰일에 내가 알뜰하게 사용된 셈이다.

모든 일이 맡을 당시에는 내 능력에 당치 않을 만큼 버거웠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교회 내 전문가들에게 찾아가 조언을 구하면 다들 열정적으로 도와줬다. 아는 것이 좀 있다고 위에서 지시부터 하려 했으면 잘된 일보다 잘못된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해왔지만 그 중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아무래도 24년간 교사로, 16년간 부장으로 섬겼던 교회학교 사역이었다.

아이들에게 말씀을 잘 전하기 위해 79년 소망교회에 나가면서부터 꼬박 21년간 새벽기도와 수요예배에 거의 빠지지 않았다. 곽선희 목사님이 7년에 걸쳐 성경 전체를 강해하는 것을 빠트리지 않고 듣기 위해서인데 그렇게 세 차례 강해를 들어놓은 것이 지금도 내 신앙생활의 큰 기반이다.

교회학교 사역은 또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장성한 뒤 다시 그들을 만나는 보람도 준다. 학생이 소망교회 부목사가 돼 돌아왔던 일도 2번이나 있었다. 이렇게 교사로 일하는 기쁨을 처음 알게 해준 것은 청년 시절 신촌장로교회에서 만났던 한 초등학생이었다.

정리=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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