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동 칼럼] 山,그림,색소폰 기사의 사진

“취미생활은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정서 순화와 새로운 나눔의 방편도 될 수 있다.”

지난해 나는 생업에 직결된 시간을 빼고는 산과 그림, 색소폰에 거의 취해서 지냈다. 오해는 없으시기 바란다. 뜻밖에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고, 모두의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서투르게 고백해보려 한다. 일천한 대로 경험을 나눠가지면 어떨까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산을 찾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산을 걷는 것만으로도 만병을 낫게 할 수 있다. 걷지 않으면 병이 생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자주 산에 가야 한다.” 이것은 내 고등학교 동창생들의 등산 클럽에서 저절로 생겨난 산행철학이다. 등산에 관해 이보다 쉽고 명쾌하게 정의한 예는 드물었던 것 같다. 이 평범한 진리는 이미 산에 자주 오르고 있거나 앞으로 다녀보면 안다.

박두진 선생의 산문 ‘등반론’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맛땀을 흘리며 숨을 달구며 미끄러지며 걸켜미며 올라가보라. 절정을 정복하며 타고 앉아보라. 귀딱지같이 다붙어 사는 시정(市井)을 보아보라. 유유한 들판 속을 허리띠처럼 푸르게 흐르는 강물들을 보라. 영기(英氣)라면 좀 우습지만 하여튼 산에 오르면 귀중한 것을 얻는다.”(시인의 고향, 홍성사)

나는 혼자 산에 갈 때가 훨씬 많다. 단체산행의 장점도 많지만 무엇보다 등산 시간과 코스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좋아서다. 나에게 등산은 그 자체가 매력적일 뿐더러 운동, 즉 생존의 한 방책이기도 하다. 헬스클럽이 대중화된 시대여서 편해졌지만 몸과 마음의 호혜 측면에서 그것과 산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불현듯 인터넷을 켜 화실과 색소폰 교습 학원을 검색하고서 곧장 찾아간 것은 작년 3월이었다. 중년의 통과의례일 수 있는, 고독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혼자 사는 법을 배우러 나서게 했다. 그것은 신앙의 영역과 다른 문제였다. 숫기가 별로인 주제에 그런 것을 결행한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는 지금 중요치 않다.

그림 그리기는 중학교 1학년 때 미술시간 이후 처음이다. 도전이었지만 예상대로 연필 잡기와 선 긋기, 원근 명암 표현 연습으로 보낸 두어 달은 고역이었다. 20, 30대가 전부나 다름없는 화실에서 50대 후반의 남자 혼자 사방에서 쏟아지는 것 같은 시선부터 견뎌내야 했다. 일주일에 한 번 3시간 정도씩, 앞만 보고 그렸다. 그러기를 반년쯤 했더니 희미하게 개안(開眼)이 느껴졌다.

이어 소묘, 그리고 마침내 수채화에 입문했다. 일주일에 한 점씩, 내 실력으로 수채화를 완성하는 데는 ‘독학’을 포함해 6시간쯤 걸린다. 평가받을 때면 원장선생님의 격려가 넘친다. 체력과 집중력의 한계를 그런 걸로 극복한다. 칭찬이 터무니없지 않은 것쯤은 이제 안다. 작품 ‘분양’을 예약한 사람도 제법 된다. 조금 기다리면 나의 미술애호 팬들에게 혼이 깃든 그림을 선물할 것이다.

색소폰 연주는 나와 더 무관한 일로 알고 살았다. 쇠붙이로 만든 색소폰이 목관악기인 것은 음원(音原)이 엄지손가락 길이 정도의 얇은 서양갈대(reed) 조각이어서였다. 처음 몇 주 동안 그걸 마우스피스에 조여붙여 간신히 발성 연습을 반복할 때의 한심함이란…. 거기도 화실에 못지않은 인내를 요구했다. 몇 달을 버텼더니 신기하게도 노래가 되기 시작했다. 원장님의 격려가 역시 나를 매우 고무시켰음은 물론이다.

연말, 친구 10여명이 모인 송년회에서 미니 콘서트를 가진 것으로 공연 데뷔식도 치렀다. 더 솜씨를 다듬는 대로 혼자든 동호인들과 함께든 본격 연주에 나설 계획이다. 교도소, 복지시설, 그리고 이따금은 눈 질끈 감고 공원 지하철 같은 데서 거리의 악사로도 나서볼 참이다.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꼭 그럴 건 아니다. 관심이 문제이지 남녀노소 상관없이 요즘은 큰돈 안 들이고 취미활동 준비할 곳이 많다. 부부끼리면 금상첨화겠다. 술 좋아하고 담배 즐기시는 분들은 그걸 줄이기만 해도 가능하다. 이것은 개인의 삶을 윤택하게 할 뿐 아니라 정서 순화와 새로운 나눔의 방편까지 될 수 있다. 예술이 유별나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석동 편집인 jerome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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