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이강렬] 꽃에도 품격이 있거늘 기사의 사진

꽃에도 품격이 있으니 이를 화품(花品)이라 한다.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이른 봄 잔설 속에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매화가 가장 품격이 높다. 고신극기로 꽃을 피우고 고고한 유향(幽香)을 풍기는 난초가 그 다음이고 모든 꽃들이 다 지고 난 뒤 늦가을 무서리 속에서도 지조 있는 수려한 자태의 국화가 세 번째다. 사람들의 발에 밟히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름 없는 길가의 잡초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지만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 매화, 난초, 국화에 높은 화품을 부여하는 것은 지난한 환경 속에서도 고고함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말은 인격을 담는 그릇

사람에게도 품격이 있다. 꽃은 피는 자태와 향기로 품격을 따지지만 사람은 내면의 사람됨, 특히 그로부터 나오는 말이 품격을 말해준다. 쓰는 언어는 그 사람의 품격을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다. 말은 인격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쓰는 말들이 거칠어지고 있고 특히 정치권의 언어들은 더욱 그렇다. 국회의원들이 쓰는 언어들은 아예 격을 논하기도 부끄러울 만큼 혼탁하다.

지난 1일 새벽에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오간 의원들의 말들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했다. 노동법 개정을 둘러싸고 흥분한 민주당 홍영표, 이종걸 의원이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쏟아낸 언사는 국회의원의 품격을 더 이상 논할 수 없는 만큼 막장까지 추락한 느낌이다. 홍 의원은 “대한민국 국회의장이 사기꾼이 돼 버렸다”고 했다. 이종걸 의원은 의장에게 “김형오씨, 똑바로 하세요.”라고 소리쳤다. 이게 대한민국 국회의 현주소이고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품위다. 소수 야당의 절박함과 절절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상황에서도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 법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신년 초하루 이 같은 국회의 모습에 대해 “지구상에 이런 국회는 없을 것”이라고 일갈을 했다. 그는 1년 전 1월 1일에도 전기톱과 해머가 등장했던 볼썽사나운 국회를 보며 “하늘 아래 이런 국회는 없을 것”이라고 개탄했었다. 1년이 지난 대한민국 국회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해가 거듭할수록 더 품격을 잃어가고 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도 모 방송과의 회견에서 “국회는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인데 마치 쿵푸 선수처럼 몸을 날려 국회를 점거하고 의사봉을 흔든다면 나 또한(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선글라스를 끼고 싶은 마음”이라고 혼돈의 국회를 나무랐다.

국회 품격 회복하는 해 되길

나중에 난 뿔이 우뚝하다(후생각고: 後生角高)는 말이 있다. 후배가 선배보다 낫다는 말이다. 유독 국회에선 이 사자성어가 통용이 안 된다. 9선의 김 전 대통령과 8선의 이 전의장이 보는 대한민국 국회는 참으로 한심한 수준이다. 박사, 의사, 변호사, 교수, 언론인 등 이른바 격을 갖춘 전문 직업인들도 국회의원만 되면 참으로 고약하게 변한다. 어느 해 신문을 장식했던 “국회가 국민을 걱정하기보다 국민이 국회를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이 새삼 와 닿는다.

일전에 모 의원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연말에 노인정을 찾았더니 노인들이 “여기 안 와도 좋으니 제발 국회에서 의원들끼리 욕지거리하고 주먹질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말라. 우리 손자들이 볼까봐 두렵다”고 꾸중을 했다고 소개했다. 율사인 그는 방송국에 ‘국회 폭력행위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이라도 내야 할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1980년대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한때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찾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찾는 것과 같다”는 말이 유행했었다. 이제는 그 말을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서 품격을 찾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찾는 것과 같다”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의원들이 국회에서 법을 제정하고 행정부를 감시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장래와 후손들을 위해 품격을 회복하는 일이 급하다. 최근 ‘국격’이란 말이 유행이다. 국회는 나라를 지탱하는 3부 가운데 하나로 국격을 보여주는 대표적 기관이다.

셰익스피어는 사람의 품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꽃에도 향기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품격이 있다. 그러나 신선하지 못한 향기가 있듯이 사람도 그 마음이 밝지 못하면 자신의 품격을 지킬 수 없다. 썩은 백합꽃은 잡초보다도 냄새가 고약하다.” 금년은 더도 말고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의원다운 품격을 회복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이강렬 국장기자 ry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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