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미래를 보고 인도하시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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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장 1∼4절

믿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나의 지혜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하나님을 보는 눈이 바로 열려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미래를 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본문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3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책임질 만한 신앙과 인격을 가지고 있었는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먹고살기 힘들다고 애굽 길, 즉 세상길로 빠져나갔고 평안할 땐 주님을 찬송하며 살다가 조금 어려우면 시험도 들고, 믿음의 자리를 떠나는 우리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애굽에 가서는 어떠했습니까. 바로 왕이 부인 사라를 탐하는 것을 보고 누이동생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를 사랑한다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하는데 아브라함은 처세술을 앞세운 현재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현재적인 모습만 보신 것이 아니라 미래의 모습을 보셨습니다. 현재는 허물도 많고 문제도 있지만 은혜 받고 변화될 아브라함, 조카 롯이 욕심을 부리면 그 욕심 다 받아주고, 조카 롯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아브라함, 눈동자보다도 귀한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아브라함의 미래 모습을 보시고 아브라함의 인생길을 인도해 가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현재적인 모습만 보고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여호수아 6장 17절에도 “이 성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주라”는 놀라운 말씀이 나옵니다.

전쟁 통에 이방 여인이자 기생인 라합이 죽고 사는 것이 뭐 그리 엄청난 일일 수 있겠습니까. 라합보다 인격적, 사회적으로 더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기생 라합과 그 집에 있는 것은 손도 못 대도록 지켜주셨을까요. 물론 바로 뒤에 대답이 나옵니다.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주었음이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짧은 역사를 보고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라합이 현재적 모습은 천하고 무시 받을 만한 여인이지만, 이 기생 라합이 어느 순간 하나님을 믿고 은혜 받으면 그 후손 가운데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나올 것을 아시고 계셨기 때문에 라합의 길을 인도하신 것입니다(마1:5-6).

참 성도는 현재적인 삶의 모습에 우왕좌왕해서는 안 됩니다. 성공했다고 교만하고, 실패했다고 좌절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이 사람의 눈으로 보기엔 대단한 일 같으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태산 같이 쌓아 놓은 재물도 한 순간 모래성처럼 무너지게 할 수도 있고, 죽은 나귀 턱뼈를 들어서도 블레셋 군대 1000명을 물리치는 하나님의 군대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 성도는 현재 모습에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미래를 보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어떤 자리에서도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면 이기는 자, 쓰임 받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전준구 경신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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