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신종수] 닥쳐올 또 다른 전쟁,개헌 기사의 사진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1월 노 전 대통령이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을 때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며 반대했다. 당시 유력 대선 주자였던 박 전 대표로서는 노 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대선 구도를 흔들려는 정략으로 여겼을 법하다.

이명박 정부에서 이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주류가 임기 초부터 잇달아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을 제안한 것에서부터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 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올해 안에 개헌 논의를 끝내고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개헌안을 처리하자고 제안한 것에 이르기까지 역대 어느 정권보다 개헌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아직까지 이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한 마디도 않고 있다. 박 전 대표는 개헌을 한다면 4년 중임제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세종시 문제가 끝나면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사이에 개헌을 둘러싼 또 하나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예감이 든다.

2007년 노 대통령의 제안 당시 여야는 18대 국회에서 개헌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개헌 추진은 이미 국민적 약속이 된 셈이다. 민주당도 6·2 지방선거가 끝나면 개헌 논의를 해보자는 입장이다. 지방선거 후에 국회 내에 개헌특위가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의 이해 일치로 현재 진행 중인 행정구역 개편은 선거구제 개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 창원-마산-진해 통합시처럼 전국에 거대 도시가 생겨나기 시작하면 중대선거구제 등을 도입할 필요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행정구역 개편이나 선거구제 개편은 개헌 논의를 더욱 재촉할 것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한나라당 지지자든 민주당 지지자든 개헌에 대한 찬성이 반대보다 높게 나온다. 여권의 적극적인 개헌 주장 때문인지 국민들 사이에 개헌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세종시 수정이 실제로 이뤄질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개헌도 실현 여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세종시처럼 정파 간에 격렬한 공방이 있을 것만은 틀림없다.

더구나 개헌론은 일개 지역의 문제인 세종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담론이다. 블랙홀처럼 정국 현안들을 빨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세종시 문제는 개헌에 비하면 전초전에 불과할 뿐이다. 개헌의 방향을 놓고도 양측의 입장은 상반된다. 이 대통령과 여권 주류가 원하는 개헌은 권력 분산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국회가 선출한 국무총리가 내각 구성권을 가지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원정부제다.

반면 박 전 대표가 선호한다는 4년 중임제는 잘하면 ‘8년 대통령’까지 가능하도록 대통령의 권한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쪽이다. 이 대통령이 세종시를 수정하자고 하자 박 전 대표가 원안보다 한술 더 떠 ‘원안+α’를 주장하는 것과 흡사한 양상으로 개헌 싸움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헌법자문위원회는 얼마 전 이원정부제와 4년 중임제를 복수 개헌안으로 마련해 놓은 상태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입장을 반영하는 듯한 안들이다.

한나라당 친이계 등 여권 주류 입장에서는 박 전 대표를 능가할 만한 차기 대선 후보를 찾지 못할 경우 분권형 개헌에 매달릴 가능성이 있다. 이렇다 할 대선 주자가 없는 민주당 등 야권도 마찬가지다. 개헌을 통해 야당도 연정(聯政)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여권 주류와 야당이 손을 잡는다면 국회 의석 분포로 볼 때 박 전 대표가 반대하더라도 개헌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과 대립이 있을 것이란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정치권의 싸움을 계속 지켜봐야 한다. 화평을 이루는 정치, 감동을 주는 정치를 우리 국민들은 언제쯤 볼 수 있을 것인가.

신종수 정치부장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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