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인사이드-정철훈] 톨스토이를 만난 한인 기사의 사진

요즘 함박눈이 첩첩 쌓인 소롯길을 걷노라면 눈의 나라 러시아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출퇴근 때마다 발밑을 간질이는 뽀드득 소리가 묘하게 위안을 주는 건 20년 가까운 세월 저쪽에서 저벅거리는 모스크바 시절의 추억 때문이다.

모스크바에 대설주의보가 내려도 체인을 감은 자동차는 좀체 눈에 띄지 않았다. 1년에 5개월 남짓 설국의 정취로 번져드는 그 겨울나라 운전수들은 이미 눈에 익숙해져 있었다. 게다가 눈 내린 도로를 질주하는 트로이카(삼두마차)는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트로이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가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의 저택이 있는 야스나야 폴랴나다.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190㎞ 떨어진 야스나야 폴랴나는 러시아어로 ‘빛나는 들녘’이라는 뜻으로 그 지역에서 많이 자라는 활엽수에서 연유된 것이다. 활엽수가 빼곡하게 들어찬 대장원의 한가운데에 톨스토이의 생가와 무덤이 있다.

1763년 톨스토이의 증조부 볼콘스키가 장원을 매입했고 1850년대 후반에 젊은 톨스토이는 이곳에 농민학교를 세워 문맹퇴치에 힘썼다. 모스크바에 머물던 2년여 동안 다섯 차례나 야스나야 폴랴나를 찾았으니 약 2만2000권의 장서가 있는 볼콘스키 대저택으로의 여행은 매혹적이었다.

‘문화공간에 있어서의 해후는 시간을 초월한다’는 말도 있거니와 100년 전 야스나야 폴랴나를 찾아가 톨스토이와 환담한 한인이 있었다. 톨스토이의 개인 주치의였던 두상 페트로비치 마코비츠키가 남긴 ‘야스나야 폴랴나 일기’ 1910년 5월 30일자엔 이렇게 적혀 있다. “레프 니콜라예비치는 말을 타고 투르베츠코이 댁을 향하여 떠났다, 아침에 한국인이 톨스토이를 방문했다.”

이름이나 방문 목적은 기록하지 않았지만 일기는 톨스토이가 죽기 반년 전에 한국인을 접견했음을 밝히고 있다. 재러한인 출신 학자 김려춘(82) 박사에 따르면 톨스토이박물관에 보관된 약 5만통의 편지 가운데 한국에서 보낸 편지를 찾아달라고 박물관에 조사를 의뢰했으나 회답은 부정적이었다. 김 박사는 그 한인의 정체가 궁금하여 자료를 찾던 중 1928년 경성에서 발간된 한글 잡지 ‘신생(新生)’에서 단서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본국 독일을 떠나 멀리멀리 노국 모스코를 향하여 두옹을 찾아간 때는 옹(翁)이 아직도 모스코의 고옥에 계실 때며 나는 퍽 연소하였다.”(김려춘 ‘톨스토이와 동양’)

필명 ‘EAS生’이 쓴 글이다. 김 박사는 이 기고자가 당시 독일에 거주하며 기독교 관계에 종사하던 한국인일 것으로 추정했다. ‘신생(新生)’이 톨스토이 탄생 100주년을 맞은 1928년, 이름 없는 독일인의 야스나야 폴랴나 방문기를 번역 게재했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다.

연전에 모스크바의 김 박사에게 다른 진전이 있는지 궁금해 전화를 걸었다. 그는 “EAS生은 1882년부터 서너 차례에 걸쳐 톨스토이를 만났으며 두 사람의 교류는 톨스토이가 작고하기 직전인 1910년까지 30년이나 계속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내 생전에 EAS生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하면 후학들이 이 일을 계속해주길 바랍니다.”

한국과 톨스토이의 직접적인 인연은 100년을 훌쩍 뛰어넘는다. 더구나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의 후원으로 제정된 톨스토이문학상 시상식은 2003년부터 매년 9월 9일 톨스토이 탄생일에 맞춰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열리고 있다.

톨스토이에 대한 종주권은 비록 러시아에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이 톨스토이문학상을 후원하고 있는 터에 세계톨스토이학의 지평을 넓히는 일을 주저할 이유는 없다. 한국이 근대적 전환을 달성하기 위해 치러야 할 내적인 축적 과정에서 실존했던 ‘EAS生’의 정체를 밝히는 일이 한·러 수교 20주년을 맞은 올해에 더욱 현실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침 올해가 톨스토이 서거 100주기다.

정철훈 문화부장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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