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타협 싫으면 국민투표하든지 기사의 사진

거의 해마다 들리던 ‘이상 난동’이라는 말이 올해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기록적인 폭설과 한파가 덮쳤다. 당장 나다니기가 힘겹고 난방비 부담도 커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안도하게 된다. 불길한 ‘지구 온난화’ 관련 예언들이 빗나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이 이에 부응하는 이론을 내놓기도 한다. 온난화가 아니라 오히려 한랭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니 빙하기에 접어들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온난화 주장의 기세도 여전하다. 올 들어 북반구 전역을 강습하고 있는 한파가 바로 온난화의 반증이라고 한다. 북극권을 감싸고도는 제트기류가 느슨해지면서 찬 공기가 밀려 내려온 탓이라던가.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다. 어느 쪽이 맞다 틀렸다 할 사안이 아니다. 나름의 지식과 논리, 또 관찰 및 분석 결과를 토대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후현상의 원인은 대단히 복합적이라고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전문가들은 잘해야 부분적 진실만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조차도 오래오래 살면서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 한,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기는 불가능하다.

유사한 난제가 우리 사회를 논쟁과 갈등의 도가니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세종시 문제다. 정부가 지난 11일 세종시 수정안을 제시하자 민주당은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몰아붙였다. 자유선진당은 대변인 논평으로 ‘염치도 없는 뻔뻔한 정부, 황당한 정부, 파렴치한 정부’라고 격한 비난을 퍼부었고 일부 소속 의원은 삭발까지 했다.

온난화 현상이 몰고 온 추위

표현이 너무 거친 게 문제이긴 하지만, 야당의 반대는 그래도 있음직한 대응이다.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여당 내의 갈등과 대립이다. 친이계와 친박계가 세종시 수정안을 싸고 정면충돌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로서는 타협의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세종시 원안을 지지하지 않는다. 선거 공약으로 삼지 말아야 할 과제였을 뿐 아니라, 특정 정파 혹은 특정인의 집권을 기념하기 위한 ‘도읍 이전’ 성격의 계획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의 본질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판단이 진리라고 생각한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다.

당연히 각 정당 및 정파의 주장엔 나름의 논리가 있고 근거가 있다고 믿는다. 다만 어느 쪽 말이 옳은지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나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행복도시가 되든 교육·과학·비즈니스도시가 되든 현 정부나 다음, 그 다음 또 그다음 정부의 임기 중에는 성공·실패의 여부가 가려지지 않을 게 뻔하다.

그런 만큼 더 조심스럽게 말해야 할 텐데 이들은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상대방을 죄인으로 몰아세우기까지 한다. 혹 자신이 정치권에 있는 동안에는 정오(正誤)가 가려지지 않을 일이어서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더 단정적으로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아닌가?(“내가 죽은 다음에 대홍수야 나든 말든.” 프랑스 루이 15세 혹은 그의 정부 퐁파두르 부인의 말이라고 전해진다.)

대의민주정치, 민주적 정당정치는 대화와 타협을 전제로 해서만 성립한다. 민주정치는 절대선이나 진리를 위한 투쟁이 아니라 차선을 위한 설득과 타협의 과정이다. 상대를 패퇴시켜야 ‘내’가 산다는 것은 전장의 논리다. 정치의 장에서는 상생이, 그게 정 어려우면 상대적 승리가 선(善)일 수 있다.

정치적 주장과 진리는 다르다

국회라는 대화 토론의 장이 마련돼 있다. 왜 거기서 논의하려 하지 않는가? 정당 정파들 모두가 언론을 상대로만 입을 연다. 정당과 국회의 존립의의를 부정하면서 정당인입네, 국회의원입네 할 것인가? 정부와 정치권은 하나같이 더 나은 충청도, 더 좋은 세종시를 위해서 다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같이 훌륭한 일 하자고 서로 악다구니하면서 만신창이가 되도록 싸운다? 누가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정말 진지하게 하는 말인데, 정부나 정치권이나 문제를 대화로 풀 자신이 없으면 국민에게 넘기시라. 국민투표라는 제도가 있지 않은가.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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