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반성없는 사법부] (중) 시국·공안사건 재판관들 기사의 사진

억울한 피해자들 수십년 눈물 흘리는 동안 그들은…

1960∼80년대 시국·공안사건에서 고문을 당해 간첩으로 몰린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던 법관 가운데 상당수가 요직에 올랐다. 해당 사건 판결이 이뤄지고 수십년이 흐르는 동안 당시 참여했던 법관들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관, 국회의원 등 사법부와 입법부의 최고위급 직위를 거쳤고, 일부 인사는 현직에 있다.

◇90명 중 28명이 사법부 최고위직 올랐다=본보 취재팀이 14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의 진실 규명과 재심을 거쳐 무죄가 확정된 60∼80년대 시국·공안사건 17건의 당시 심급별 판결문을 국가기록원 등을 통해 단독 입수, 전수 조사한 결과 당시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법관은 모두 90명(상고심 제외)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2명은 대법원장에 올랐고 대법관(5명) 헌법재판관(4명) 고등법원장(8명) 지방법원장(9명) 등 28명이 법원장급 이상에 기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부분은 은퇴했지만 김능환 대법관과 조대현 헌법재판관은 현직에 있다. 법조계를 떠나 국회의원이 된 인사도 4명(전직 포함)이다. 현역 국회의원도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무소속 이인제 의원, 한나라당 여상규 의원 등 3명이다.

◇전·현직 대법원장 및 대법관 7명=김능환 대법관은 83년 전주지법 판사 시절 오송회 사건의 1심 배석판사로 참여했다. 당시 재판부는 군산제일고등학교 이광웅 교사 등 9명이 북한을 찬양하고 이적단체를 결성했다는 혐의를 인정해 징역 4년∼선고유예를 선고했다.

그러나 진실위는 이 판결에 대해 “증거재판주의를 위반해 범죄사실을 인정한 위법한 판결”이라며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사법부의 책무를 저버린 처사”라고 결정했다. 결국 오송회 사건에 연루된 피고인들은 25년 만인 2008년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됐다. 재심 재판부는 “당시 재판부가 고문으로 이뤄진 허위자백이란 사실을 밝혀내려는 의지가 부족했다는 점에 커다란 아쉬움이 있다”며 “이런 점이 우리 재판부로 하여금 다시 한번 법관의 자세를 가다듬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김 대법관은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석달윤 간첩조작 사건 2심 재판장이었던 최종영 전 대법원장과 정삼근·김양기 간첩조작 사건의 2심 재판장을 맡았던 서성 전 대법관은 본보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납북어부 강대광 간첩조작 사건의 2심 재판장을 맡았던 윤관 전 대법원장과 백남욱 간첩조작 사건 2심 배석판사였던 배만운 전 대법관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작고한 윤운영 전 대법관은 고문으로 증거가 조작된 이수근간첩사건 2심의 재판장을 맡았다.

◇전·현직 헌법재판관도 4명=조대현 헌법재판관은 82년 서울형사지법 판사로 재직 중 차풍길 간첩조작 사건의 배석판사로 1심에 관여했다. 당시 재판부는 차씨가 조총련계 대남공작원의 지시를 받아 국가 기밀을 탐지했다는 혐의를 인정해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공판 과정에서 차씨가 고문당했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이후 국가안전기획부 수사관들의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이끌어낸 조작 사건임이 드러났다. 진실위는 “별다른 물적 증거가 없음에도 임의성 없는 자백을 근거로 증거재판주의를 위배했다”고 결정했다. 차씨는 2008년 7월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조 재판관은 비서관을 통해 “전혀 기억이 없다”고 전했다.

아람회 사건의 파기환송심 재판장을 맡았던 이영모 전 헌법재판관은 “내가 잘했다 못했다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고 밝혔다. 석달윤 간첩조작 사건 파기환송심 배석판사였던 이상경 전 헌법재판관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주심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송회 사건 2심 재판장을 맡았던 이재화 전 헌법재판관은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당시 법관 중 일부는 현역 국회의원=대법관을 지낸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61년 민족일보 사건 당시 혁명재판소 1심 재판의 심판관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민족일보 사설이 북한에 동조했다”며 조용수 사장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2006년 인권침해라는 진실위 진실규명이 내려졌고, 2008년 재심이 열려 조 사장의 무죄가 확정됐다. 이 총재는 박선영 대변인을 통해 “재판부 이름으로 나간 판결에 대해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여상규 의원은 81년 서울지법 1심 배석 판사로 석달윤 간첩조작 사건에 참여했다. 당시 재판부는 중앙정보부의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혐의를 인정해 사형, 무기징역 등을 선고했으나 지난해 1월 재심에선 무죄가 확정됐다. 여 의원은 “기억나지 않지만 초임 시절이라 선배 법관들을 존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제 의원은 82년 대전지법 판사로 재직하며 아람회 사건 1심에 배석으로 참여했다. 경찰이 고문을 통해 고교동창 11명의 모임을 반국가단체로 둔갑시킨 사건이었다. 역시 진실위 조사와 지난해 5월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됐다. 이 의원은 보좌관을 통해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선정수 양진영 기자 js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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