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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임한창] “제게 물을 줘요”

[삶의 향기-임한창] “제게 물을 줘요” 기사의 사진

한 성직자가 갑작스런 재난으로 부상당한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는 시설을 방문했다. 신음소리가 귓전을 자극했다. 환자들은 온전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 의약품 물 음식 의료진 등 모든 것이 열악했다. 성직자는 비참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가슴을 쳤다. 그리고는 팔과 다리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한 환자 앞에 멈춰 섰다.

“나는 성직자입니다. 당신을 위해 성경을 읽어주겠소. 그리고 상처 난 곳에 손을 얹고 기도해주겠소.”

환자가 손사래를 쳤다.

“마실 물이 없어요. 목이 말라 견딜 수가 없어요. 제발 저에게 물을 좀 주세요.”

성직자는 환자에게 물을 먹였다.

“자, 이제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립시다.”

사랑은 실천이 따라야

“잠깐만요. 제가 지금 너무 추워요. 며칠 동안 벌거벗은 채 지내고 있답니다. 제게 담요를 좀 주세요.”

성직자는 입고 있던 양복을 벗어 환자에게 덮어주었다. 마음의 안정을 찾은 환자가 성직자에게 당부했다.

“이제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저도 신앙을 갖고 싶습니다.”

성직자는 통증과 갈증과 추위에 떠는 환자의 손을 잡고 눈물의 기도를 드려주었다. 이윽고 환자는 진중한 자세로 복음을 받아들였다.

오늘 아침, 식탁에서 한 소년을 만났다. 소년은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기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먹다 남은 빵 한 조각이 들려 있었다. 상처보다 굶주림이 더 두려웠을까. 소년은 세상을 향해 뭔가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여러분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제발 좀 도와달라고…. 기도보다 물과 담요가 필요하다고…. 소년의 얼굴 뒤편으로 엿가락처럼 휘어진 집들이 보였다. 그것은 지진으로 폐허가 된 아이티의 비극적인 풍경화였다. 마음이 심란했다.

이날 오전,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고서야 마음이 가벼워졌다. 한국교회 양대 봉사 기구인 한국교회봉사단과 한국교회희망연대가 전격적으로 통합을 선포했다는 것이다. 양 단체 대표들은 명예 직함 권위 명분 등을 모두 먼지처럼 털어버렸다. 아이티의 처참한 상황을 접하면서 ‘내려놓음’의 본을 보여주었다. 첫 사업으로 100만 달러를 모금해 아이티를 지원한다고 한다. 의료진과 자원봉사단을 현장에 보내 ‘한국교회’의 이름으로 사랑을 실천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태안 앞바다 기름띠 제거 작업에 솔선수범한 바로 그 성직자들이 이번에는 사랑을 실천할 시선을 아이티로 넓힌 것이다. 이제 양 단체는 총회를 거쳐 한국교회희망봉사단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명실상부 한국교회 대표 봉사단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봉사자는 두 종류가 있다. 가는 봉사자와 보내는 봉사자가 있다. 우리가 직접 현장에 가서 봉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봉사자를 물질적·영적으로 돕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작은 정성으로 아이티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해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보람이 어디 있을까.

가는 봉사자, 보내는 봉사자

“제게 물을 줘요. 담요를 줘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들에게 물과 담요를 지원하자. 그리고 기도하자. 기독교는 관념의 종교가 아니다. 실천의 종교다. 기독교는 입의 종교가 아니다. 손과 발의 종교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사랑은 언어의 유희에 불과하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수치스러운 별명은 ‘말만 잘 하는 사람들’이다. 말은 한 순간 사람을 감동시키지만 그 여운은 짧다. 그러나 헌신적인 사랑은 오랫동안 사람을 감동시킨다. 입으로의 사랑이 액세서리라면 실천하는 사랑은 보석이다. 지금은 보석 같은 사랑이 필요하다.

임한창 종교국장 hc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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