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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식물이야기] 동백꽃의 혼례

[고규홍의 식물이야기] 동백꽃의 혼례 기사의 사진

세상의 모든 식물은 자손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다. 씨앗을 맺기 위해서는 튼실한 암술과 수술이 필수다. 암술과 수술의 혼례를 도와줄 중매자를 불러모으기 위해서는 화려한 매무시와 매혹적인 향기도 필요하다.

모든 꽃은 자신의 빛깔과 향기에 맞는 수단을 끌어들여 꽃가루받이를 이루고 떨어진다. 꽃가루받이를 이루어 씨앗을 맺게 된 꽃은 더 이상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피어난 게 아닌 까닭에 낙화는 사람의 뜻과 무관하다. 그래서 오랫동안 꽃을 보기 위한 전시 온실에서는 낙화를 늦추기 위해 곤충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혼례를 치를 때까지 남아있어야 하는 꽃의 본능을 이용하는 것이다.

수분 곤충이 많지 않은 겨울에 피어난 꽃의 꽃가루받이는 쉽지 않다. 하릴없이 벌 나비 대신 파리를 불러모으는 팔손이와 같은 나무도 있고, 아예 오지 않는 곤충을 기다리지 않고 바람을 이용해 꽃가루받이를 이루는 식물도 있다.

겨울에 피어나는 동백꽃은 곤충도 바람도 아닌 새를 중매자로 선택했다. 동박새라는 텃새다. 눈 가장자리의 하얀 테두리가 선명해 백안작(白眼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동박새는 10㎝쯤밖에 안 되는 작은 새다. 동백은 꽃송이 안에 동박새가 좋아하는 꿀을 채우고, 동박새는 꽃에서 겨울 양식을 실컷 챙기면서 동백의 꽃가루받이를 돕는다.

혼례를 마친 동백꽃은 이내 떨어지는데, 그 낙화 풍경이 사뭇 다르다. 시든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다른 꽃들의 낙화와 달리 꽃잎은 물론이고, 꽃송이 안쪽의 노란 꽃술까지 전혀 시들지 않은 상태에서 통째로 떨어진다. 꽃잎이 여럿으로 나뉘지 않은 통꽃이어서다. 갑작스러운 낙화를 놓고 불길함을 감지하는 축도 있지만, 숨 막힐 듯 시적(詩的)인 풍경인 것만은 틀림없다.

동백꽃의 계절이 서서히 다가온다. 맹렬했던 추위가 한풀 꺾이면서 남녘의 숲에서부터 동백이 꽃을 피울 기세다. 동백꽃은 차츰 북쪽으로 올라오며 피어나서 동백숲으로 유명한 전북 고창 선운사에서 4월쯤 절정을 이룬다.

아직 만개한 동백을 보기엔 이르지만 동백과 가까운 친척관계인 애기동백은 지금이 한창이다. 여리디 여린 속살을 드러내고 겨울을 나는 애기동백의 처연함이 장하게 다가온다.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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