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이명희] 강남 엄마 따라잡기 기사의 사진

새해 들어 다시 학원가를 기웃거리고 있다. 아이와 함께 미국 연수를 갔다 돌아온 지 1년. 초등학생 아이는 1년 6개월간 미국에

서의 생활을 정말 즐겼다.

지역예술센터에서 하는 연극반에 가입해 미국 아이들 틈에서 주인공도 해보고 미국 교회에 다니며 6개월마다 뮤지컬 공연에도 참가했다.

“선배, 1억원 벌어 가시는 거예요.” 미국에서 귀국을 준비할 당시 타사 후배는 한국에서의 사교육비를 빗대 이렇게 얘기했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사교육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요즘 뜬다는 영어학원 리스트와 수학학원 리스트를 건네주는 같은 동네 아줌마의 충고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아이를 새벽 5시30분에 깨워 과목별 과외를 시켰더니 민사고, 카이스트에 합격했다는 대기업 임원의 자녀교육 성공담도 한쪽 귀로 흘려들으면서. 다만 아이가 영어를 까먹지 않도록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영어수업에 보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고민에 빠졌다.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달 초 사교육비 부담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명문대 합격 지름길로 여겨지는 외고 입시 개편안을 내놨지만 사교육시장은 여전히 건재하다. 학원가 설명회에는 여전히 학부모들이 북적대고 있고, 학원들은 조변석개(朝變夕改)식 교육정책에 콧방귀를 뀌고 있다.

“외고 입시전형 때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다구요? 두고 보세요. 언제 바뀔지 모릅니다. 언제 어떻게 제도가 바뀌더라도 우린 아이들을 대비시켜야 합니다.” “저희 학원은 단순암기식이 아닌 ‘Critical Thinking(비판적 사고)’을 가르칩니다.”

중학생들 사이에선 어학원 대신 종합학원을 찾는 ‘풍선효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요즘엔 4박자가 뒷받침돼야 아이가 좋은 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는 우스개가 나돈다. 할아버지의 재력(아버지의 재력뿐만 아니라),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대부분 아빠들은 아직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어 아이 교육에 방해가 되기 때문), 아이의 체력이 갖춰져야 한다나?

3년여 전 세미나 참석차 일본 출장을 갔을 때 동행했던 타사 여기자 선배는 아들을 D외고에 입학시켜 졸지에 ‘못된 엄마’에서 ‘훌륭한 엄마’로 신분상승한 비결을 이렇게 털어놨다. “학원 고르기 나름이에요.”

하지만 그 내로라하는 학원들을 보면 씁쓸하다.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한 요령을 가르칠 뿐 창의성이나 개성을 살리는 교육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미국식 교과서로 미국식 수업을 한다는 유명학원에 외국인 강사가 한 명도 없다는 것도 놀라울 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대상 수업은 그나마 외국인 선생이 있지만 고학년과 중학교로 넘어가면 평일 밤 10시까지, 주말도 없이 이어지는 강행군을 버텨낼 외국인 선생들이 없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영어스피치대회, 영어토론대회를 위한 특강반까지 개설해놓고 수강생 중 몇 명이 상 탔다고 광고하는 학원들을 보면 ‘학원 전지전능(全知全能)시대’가 온 듯하다.

통계청은 전국 초·중·고교의 사교육비 규모를 2008년 기준 20조9000억원, 학생 1인당 월평균 23만3000원, 사교육 참여율은 75.1%로 추정했다. 그러나 실제는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가 세계 1위 국력을 갖춰 영어를 무시하고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삼성전자, SK 등 기업들처럼 영어 공용화를 추진해서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것은 어떨까. 미국 연수시절 우리보다 훨씬 못 사는 국가에서 유학 온 친구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국어와 영어를 함께 배워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것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았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아이들이 밤 10시까지 학원에서 시달리지 않아도, 미국으로 굳이 조기유학을 가지 않더라도 더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이명희 산업부 차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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