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정진영] ‘공중부양’과 한·미 FTA 기사의 사진

“강기갑은 ‘공중부양’으로 연일 시끄러운데 한·미 FTA는 소식이 없네. 도대체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거냐.” 최근 신년 모임에서 만난 고교 동기가 내게 물었다. 친구의 다소 뜬금없는 질문. 공중부양과 한·미 FTA라….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의 ‘공중부양’과 한·미 FTA의 상관관계도 새삼스러웠고, 그 난리를 쳤던 한·미 FTA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지난해 1월의 국회 상황을 더듬었다. 당시 정국은 한·미 FTA 국회비준 여부로 뜨거웠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을 상정하려는 여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야당은 극한 대립을 했다. 민노당 당직자들은 국회 로텐더 홀을 점거, 상정 저지 농성을 벌였고 국회 경위들은 이들을 강제 해산했다. 국회 사무처의 이 같은 조치에 화가 난 강 대표는 국회 사무총장실에 들어가 집기를 넘어뜨리고, 이어 탁자 위에서 날아오른(?) 다음 발로 테이블을 밟았다. ‘거뭇거뭇한 긴 수염에 한복’이 트레이드마크인 강 대표의 활극은 당시 ‘공중부양’이란 제목으로 크게 보도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무죄판결 놓고 ‘이념부양’

1년이 지난 요즘 그는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검찰이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그를 기소한데 대해 최근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검찰은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법원을 강하게 몰아붙이고 있고, 한나라당 일부 의원은 대법원장을 향해 직접 공격을 퍼붓고 있다. 급기야 사회 여러 부문에서 진보와 보수의 다툼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공중부양’이 ‘이념부양’을 낳고 있다.

그러나 사안의 본질, ‘공중부양’을 촉발한 한·미 FTA의 상황에 대해서는 소식이 뜸하다.

한동안 그렇게 요란스러웠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조용하다. 간간이 들리는 건 갑갑한 소리뿐이다. ‘폭력 국회’라는 비난을 들으면서까지 국회 외통위에 비준 동의안이 상정된 것이 지난해 4월. 9개월이 지나도록 진척이 없는 것은 물론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다.

지난해 1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방한 때 이명박 대통령이 “자동차 문제가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면 우리가 다시 이야기할 자세가 돼 있다”고 밝히면서 그나마 우리 측에 유리했던 자동차 부문의 ‘재협상 논란’까지 한때 불거졌다. 한미경제연구소(KEI)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 중인 여야 의원들은 지난 15일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 방문 중 만난 행정부, 의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연내 한·미 FTA의 미 의회 비준은 매우 부정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내에 성사될 가능성도 물건너갔다는 의미다. 오히려 미국은 21일 한국과 일본의 미국산 자동차 시장 무역 장벽과 관련한 청문회를 개최키로 해 우리가 자동차 시장을 추가로 개방하지 않을 경우 비준을 하지 않을 기세다. 2008년 촛불집회라는 사상 초유의 국론분열 현상을 겪으면서까지 한·미 FTA를 밀어붙인 우리 정부의 모양이 우습게 됐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일이 충분히 예견됐다는 점이다. 미국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한·미 FTA는 처음부터 우리가 서두른다고 타결될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한·미 FTA 협정에 부정적이었고, 당선 이후에도 역대 다른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주 관심사는 2년 후 치러질 중간선거(오는 11월)였다.

난리쳤던 비준안은 지금…

안타까운 것은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주(州) 대부분이 자동차 협정에 불만을 가진 곳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한·미 FTA는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셈이었다. 이런 미국의 정세를 몰랐을 리 없음에도 우리 통상 당국자들의 입장은 일관됐다. ‘우리가 먼저 비준하면 미국도 어쩔 수 없이 뒤따라 올 것이다’였다. 터무니없는 오판인지, 옹고집인지 국민들은 어리둥절하다.

의사 결정을 주도하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는 서로 얼굴을 내밀던 이들 중 누구도 정책 실패에 대해 사과하는 사람은 없다. 강기갑을 ‘액션 배우’로 만들었던 감독과 제작자, 연출가들은 여전히 화면 뒤에 숨어 있다. 비싼 입장료를 낸 관객들만 재미 없는 영화를 계속 보고 있다. 환불은 안 되나.

정진영 편집국 부국장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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