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이근식] 과학실증주의 극복하자 기사의 사진

사람의 판단은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제비꽃을 보고 제비꽃임을 아는 것이 사실판단이고, 제비꽃을 보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치판단이다. 사실판단의 오류 여부는 사실 확인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판별할 수 있는 반면에, 가치판단은 주관적이므로 오류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별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가치판단을 과학의 영역에서 배제하자는 과학실증주의가 현대과학을 지배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과학실증주의는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은 잘못된 주장이다.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는 가치관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윤리와 상관없는 개인적 취향이나 인생목표에 관한 가치관이며, 둘은 윤리와 관련된 가치관(윤리의식)이다. 개인의 취향이나 인생목표는 개인에게 맡길 문제이므로 과학에서 따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윤리문제와 관련된 가치판단은 이와 다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므로 어떤 인간도 윤리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학자도 윤리적 판단을 외면할 수 없다. 사람들은 개인의 이해관계나 편견 때문에 윤리적 판단에서 종종 잘못을 저지른다. 뿐만 아니라 사실판단에서도 사람들은 종종 오류를 범한다. 사실판단에서 오류를 범하는 원인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정보가 부족하거나 사고능력(정보의 처리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실을 잘못 파악하는 경우이다. 정보와 사고능력이 불완전한 것이 인간이므로 누구나 이런 과오를 범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둘은 자신의 편견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사실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왜곡하는 경우이다.

인간의 인식엔 한계 있어

인간의 인식능력은 부족하고 현실은 복잡하며 정보도 부족하여 사람들은 무엇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설명된다. 이처럼 잘 알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주관적 편견이나 이해관계에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이끌려 사실을 왜곡하여 잘못 인식하고, 잘못된 인식은 다시 잘못된 편견을 뒷받침한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자 한다. 심지어 흰 꽃을 보면서도 빨간 꽃이라고 우기기도 한다. 잘못된 가치판단과 사실판단이 상호 상승작용을 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인류 역사상 큰 죄악을 저지른 사람 치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이 없었고,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사람이 없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직업이나 교육수준에 상관없이 자신의 이익을 사회의 이익이라고 강변하면서 자신이 틀린 줄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떠드는 소리가 천지에 가득하다.

과학에서 배제되어야 할 것은 비윤리적인 가치관이나 이념이지 건전한 윤리의식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므로 어떤 사람도 윤리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학자가 돈이나 권력이 시키는 대로 아무 일이나 하면서 과학실증주의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학자가 피해야 할 것은 건전한 윤리의식에 입각한 가치판단이 아니라 자신의 편견이나 이해관계라는 색안경을 끼고 사실을 잘못 인식하는 것이다. 학자도 한 인간으로서 건전한 윤리의식에 입각한 가치판단을 외면할 수는 없다.

건전한 윤리의식 위에 서야

윤리관이 시대마다 나라마다 다르다고 하지만 인류역사와 함께 발전하여 온 보편적인 윤리의식이 존재한다. 신분, 인종, 종교, 성, 재산, 학벌 등 그 어떤 이유로도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모든 사람의 인권을 존중해야 하며 강자의 편에 붙어 약한 사람을 핍박하지 말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보편적 윤리의식에 입각한 가치판단은 학자만이 아니라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의무이다. 학자가 특정한 목적의식이나 이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이 의무를 회피하는 것은 자신이 윤리적 존재로서의 인간임을 부정하는 것이며, 학노(學奴)나 학상(學商)으로 자신을 전락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처럼 어지러워진 데에는 이런 현대판 학노나 학상들의 책임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이근식(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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