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딸린 작업실… 선생님은 고상했지만 외로웠죠” 기사의 사진

권진규 작품전, 그리고 그의 대표작 ‘지원의 얼굴’ 실제 주인공 서양화가 장지원

테라코타의 선구자로 꼽히는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작품전이 덕수궁미술관에서 2월 말까지 열린다. 조각 100점, 드로잉 40점, 석고틀 1점 등 전시작 가운데 ‘지원(志媛)의 얼굴’은 교과서에도 실린 그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의 실제 주인공은 서양화가 장지원(64·안양과학대 교수·사진)씨다. 한국여류화가회 회장을 맡는 등 미술계 안팎의 활동에 바쁜 장 화백은 스승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권 선생님이 일본 무사시노미술학교를 나와 1959년 귀국한 뒤 서울대와 홍익대 강의를 했어요. 66년에 저는 홍익대 2학년이었는데 선생님이 저를 무척 예뻐하셨고, 큰 관심을 갖고 지도해 주셨죠. 서울 성북구 동선동 언덕에 있던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1주일에 2회, 2개월여 동안 모델을 했습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67년에 만들었다. 이듬해 도쿄 니혼바시화랑에서 열리는 개인전에 출품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는 여류소설가, 여대의 메이퀸, 신문회관의 여직원 등 젊은 여인을 모델로 한 흉상을 많이 제작했다. ‘영희’ ‘명자’ ‘봉숙’ 등이 당시의 작품들이다.

‘지원의 얼굴’은 머리카락을 묘사하지 않고 어깨부분을 깎아내림으로써 보는 이의 시선을 얼굴에 집중하게 하는 작가의 독특한 스타일이 두드러진다. 가느다란 눈매에 길쭉한 코, 살짝 미소를 띤 입술이 속세에 초연한 듯한 표정을 연출하고 있다. 삼성문화재단이 97년에 펴낸 ‘한국의 미술가 시리즈-권진규’ 표지에 실린 작품이기도 하다.

“작업실이 딸린 집 마당에 깊은 우물이 있었고, 석양 빛이 스며들어 분위기가 적막했지요. 선생님은 작품을 통해 고귀한 정신의 세계를 표현하려 했지만 삶 자체는 너무 고독했던 것 같아요.”

권진규는 73년 5월 4일 오후 6시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자살했다. 그날 아침 고려대 박물관에서 자신의 작품을 둘러본 작가는 ‘인생은 공(空), 파멸’이라는 내용의 편지와 얼마의 장례비를 남겨둔 채 세상을 등졌다.

‘지원의 얼굴’은 두 점이 제작돼 한 점은 일본 전시에서 판매되고 나머지 한 점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 중이다. 몇 년 뒤 석고틀로 몇 점을 더 만들어 제자인 장 화백도 한 점을 가졌다. 이후 어느 날, 장 화백의 집(남편은 극사실 정물화로 유명한 구자승 화백)에 도둑이 들었으나, 지금 가격으로 치면 몇 천만원에 호가하는 이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고 놔뒀다는 일화도 있다.

장 화백은 새, 꽃, 나무, 나비 등을 소재로 ‘숨겨진 차원’이라는 제목의 연작을 작업하고 있다. 그의 그림 곳곳에 산재해 있는 사물의 이미지는 작품 너머의 또 다른 메시지를 들려주는 스승의 조각과 통한다.

이광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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