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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숲에서 기지개 켜는 봄

[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숲에서 기지개 켜는 봄 기사의 사진

남녘의 숲에서 고로쇠나무의 수액을 채취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나무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봄을 맞이하기 위해 언 땅에서 애면글면 물을 끌어올린다는 이야기다. 유난스레 추웠던 겨울이 이제 서서히 지나간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여전히 밤에는 춥지만 낮이 되면 제법 포근해지는 요즘은 고로쇠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하는 적기다. 밤에 나무 줄기 안에서 얼었던 수액이 포근해지는 낮에 녹으면서 부피가 늘어나 줄기 밖으로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아직 성급한 기대이지만 분명한 봄 소식의 하나다. 봄은 그렇게 숲에서부터 기지개를 켠다.

고로쇠나무는 물을 많이 머금는 특징이 있어서, 굳이 줄기에 칼집을 내지 않아도 줄기 표면의 갈라진 틈으로 물을 내보낸다. 저절로 흐르는 수액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줄기에 칼집을 내고 그 자리에 호스를 꽂아 방울방울 맺히는 수액을 받아내야 한다. 이 수액은 뼈를 튼튼하게 할 뿐 아니라, 신경통과 고혈압 등에도 효험이 있어, 신라 때부터 채취한 기록이 있다.

역시 오래 전부터 같은 방식으로 수액을 채취한 나무 가운데 북아메리카에서 자라는 설탕단풍나무가 있다. 캐나다 국기에 그려진 나뭇잎이 바로 설탕단풍나무의 잎이다. 이 나무의 수액이 곧 메이플시럽이다.

메이플시럽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중요한 식량이었다. 원주민들은 메이플시럽을 음용뿐 아니라, 상처 치료에까지 요긴하게 활용했다. 그들은 수액 채취에 앞서 성대한 잔치를 벌인다. 흥겹지만 경건하게 치러지는 이 행사의 핵심은 나무에게 수액 채취를 허락받는 일에 있다. 그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나무에게 허락을 구한 뒤에야 비로소 꼭 필요한 만큼의 수액만 받아내는 것이다.

넘쳐 흐르는 수액을 조금 더 빨아낸다 해서 나무의 생명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무의 수액은 잎사귀 끝까지 올라가서 잎을 푸르게 키우는 데에 먼저 쓰여야 하는 나무의 영양분이라는 사실 만큼은 잊지 말아야 한다. 나무의 것은 나무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게 마땅하다.

더구나 효과 좋은 영양제가 넘쳐나는 시대다. 그럼에도 굳이 고로쇠나무의 수액을 찾는 건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겠다. 그렇다면 최소한 자연에 대한 경건함, 혹은 겸허한 자세가 전제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곧 더 오랫동안 자연이 전해주는 생기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길임에 틀림없다.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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