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강원래-김송의 7년 결혼생활은 "지옥에서 천국으로"

강원래-김송의 7년 결혼생활은

“저 ‘천사 아내’ 아니에요. 가면 속에서 한없이 완악했던 지난날을 고백합니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가수 강원래(41)씨와 2003년 결혼한 김송(38)씨는 ‘날개 없는 천사’로, ‘두려움 없는 사랑’의 주인공으로 불렸다. 가끔 TV 연예 프로에 공개되는 아내로서의 헌신적인 모습도 감동을 줬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3년7개월 전 하나님을 만나 변화하기까지 김씨의 고백은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에 대해 새삼 곱씹어보게 한다.

“밖에다 대고는 ‘저희 잘 살고 있다’고 웃었지만 안에선 매일 전쟁이었어요.” 그가 털어놓는 결혼 후 3년여의 삶은 다소 충격적이다. 남편의 간병을 감당하기는 했지만 입으로는 심한 욕설, 심지어 장애인을 비하하는 욕도 서슴지 않았다. “너는 바람 피워 천벌 받았지만 나는 왜 네 똥 치우며 살아야 해!”라는 말은 일과였다. 저녁이면 화장하고 남편에게 당당하게 “나 클럽 가”라며 나가 밤새 춤추기도 했다. 새벽에 돌아와 남편의 자는 모습을 보면 미칠 듯한 마음에 통곡을 했다. 그러나 세간의 이목이 두려워 이혼할 수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 위에 궤양이 18개나 생겼고 인터넷 게임 중독에 빠졌다.

절망이 그토록 깊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 전까지 남편에 대한 집착이 너무 컸던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때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는 모습에 반한 순간부터 남편은 내 우상이었어요. 속을 썩여도 늘 설레고 우러러 보이는 ‘내 남자’였죠.”

라헬을 얻기 위해 21년을 하루처럼 여기고 종살이 한 야곱처럼 10여년의 연애 기간은 며칠처럼 지나갔다. 남편이 장애를 입었을 때도 주변에서 다 말렸지만 그는 자신의 사랑으로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이후의 삶은 며칠이 10년처럼 길었다. “육신의 사랑이 끝나고 내가 없으면 화장실도 못 가는 남편의 존재를 깨닫자 우상이 무참히 깨진 거죠.”

그러던 그에게 4년 전 사건이 일어났다. 아버지와 이혼하고 호주에서 재혼했던 어머니가 뇌종양 판정을 받고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사이에 어머니는 잃었던 신앙을 되찾고 아버지와도 화해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엄마가 이혼 후에 어떻게 교회를 등졌는지 알기 때문에 저도 그간 전도하는 사람에게 소금을 뿌릴 만큼 교회를 증오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하나님 앞에 다시 엎드리고, 절대 불가능할 줄 알았던 아버지와의 화해를 목격하니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싶었지요.”

김씨가 성장기에 입었던 상처들도 치유되기 시작했다. 어머니 편에 서서 등졌던 아버지, 새어머니, 고모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고모가 소개한 서울 대치동 ‘우리들교회’(김양재 목사)에 나가 하나님을 만났다.

“그 전까지는 제가 죄인인 줄 몰랐어요. ‘나처럼 착한 사람이 어디 있어’ 했죠. 죄를 깨닫고 보니 모든 싸움이 저 때문에 일어났어요. 그 후 집안에 전쟁이 그쳤죠. 내 불행의 원흉이었던 남편이 이제는 한없이 고마워요. 나를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 수고해준 사람이니까요.”

김씨는 특히 말씀이 생생하게 들리는 은사를 받았다며 큐티 책을 보여줬다. 여백마다 새까맣게 메모가 된 책에서 은혜 받은 말씀들을 짚어주는 그의 표정을 보니 이제야 진정 ‘두려움 없는 사랑’을 찾은 듯했다.

“이제 제 기도제목은 남편의 구원이에요. 아직 철벽 같지만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도 해요. 처음에는 본 척도 안하던 저희 구역 식구들과 함께 점심 먹게 됐으니까요. 같이 기도해 주실거죠?”

인터뷰를 마칠 즈음,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강원래씨가 아닐까 싶었다, 모든 기적이 그를 향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신청하기

국내외 교계소식, 영성과 재미가 녹아 있는 영상에 칼럼까지 미션라이프에서 엄선한 콘텐츠를 전해드립니다.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