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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33도 제주도의 커피 실험… 우리나라 첫 커피 농사꾼 노진이

북위 33도 제주도의 커피 실험… 우리나라 첫 커피 농사꾼 노진이 기사의 사진

커피 농장에서 커피 향은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바닷바람에 시달린 낡은 비닐하우스에 들어서자, 발이 진창에 ‘쑤욱’ 빠졌다. 입구에는 농기구가 뒹굴었다. 화분 수만개가 빼곡히 들어선 안쪽은 더 어수선했다. 나무가 양계장 닭들마냥 잎을 부빈 채 다닥다닥 서 있다.

오렌지색 후드셔츠에 파마기 없는 생머리를 찰랑이며 그녀가 나타났다. 제주시 도평동 400평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커피나무 2만4000그루의 주인. 바리스타이자 커피 농사꾼 노진이(41)씨였다.

커피콩을 키우는 노동은 스타벅스 커피를 즐기는 것과는 분명 달랐다. 노씨의 손등은 부르트고, 손톱 밑은 까맸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서는 눈만 반짝였다. 노씨가 말했다. “농장이 엉망이죠?” 솔직히 그랬다.

커피나무를 키운 지난 2년. 그녀의 삶이 어떠했을지, 어쩐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노씨의 통장 잔액은 오래 전 바닥을 쳤다. 쓸 수 있는 신용카드는 한도까지 죄다 빼서 썼다. 은행 대출금은 이제 갚을 일만 남았다. 나무가 크면서 농장은 포화 상태가 됐다. 이제 넓은 곳으로 이사해야 했다. 판은 커지는 데 역시 또 돈이 문제였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내가 너무 큰일을 벌였구나. 어쩌지’ 하고 멍하니 앉아 있곤 했어요.”

‘나무를 팔고 빚이라도 정리해야 할까’ 고민할 즈음, 결실이 생겼다. 커피나무에서 하나 둘 커피 체리(껍질을 벗기기 전 열매 상태)가 익기 시작했다. 지난 20일 노씨는 제 손으로 딴 커피콩으로 처음 커피를 내렸다. 2008년 초 미국 종묘 회사에서 커피 씨앗 1000알을 구입한 지 2년 만이다.

잘 익은 커피 체리는 앵두처럼 빨갛다. 그걸 따서 껍질 벗겨 말린 뒤 또 한번 벗겨 볶으면 검은 커피빈이 된다. 노씨는 연초부터 열리기 시작한 커피 체리를 수확해 모아뒀다가 첫 시음날인 이날 볶고 갈아 커피를 걸러냈다. 커피 잔을 손에 들고 노씨가 잠시 숨을 골랐다.

“막 볶은 커피빈은 탄소가 많아서 써요. 탄소가 날아갈 때까지 2∼3일간 기다려야 해요. 오늘 정확한 평가는 일러요.”

전제를 단 뒤 그녀가 조심스럽게 한 모금 머금었다. 긴 침묵. 이어 미소인 듯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나쁘지 않아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노씨가 구입한 커피 씨앗은 해발 1000m 이상에서만 자라는 아라비카. 그중에서도 남미 커피 타이피카가 대부분이었다. ‘제주 타이피카’의 탄생이었다.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1년여 직장생활을 하던 노씨는 1992년부터 어머니의 고향 제주도로 건너가 과외교사를 하며 살았다. 평범한 축은 아니었다. 친구 사이에선 눈매 매섭고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덕분에 새로 문 여는 레스토랑에 불려다니곤 했다. 일종의 아마추어 컨설턴트. 가구 골라 주고 커피 맛에도 참견했다. 그때까지 커피는 취미였다.

2006년 일본 여행 후 일이 커졌다. 그곳 로스터리 카페(커피콩을 직접 볶고 갈아 커피를 만드는 카페)에서 커피 맛에 빠졌다. 이듬해 바리스타와 로스팅(커피콩 볶기) 전문가 과정을 정식으로 밟았다. 남들은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노씨에게는 그게 시작이었다.

맛있는 커피를 찾아다니는 커피 투어를 시작했다. 한 달간 서울에 머물며 커피에 200만원 가까이 쏟아 부었다. 압구정동 청담동 명동 삼청동 등지의 카페를 돌며 하루 10여잔씩 커피만 마셔댔다. 파주 수원(경기), 강릉 원주(강원), 대구 등에 있는 유명 카페도 뒤지고 다녔다.

관심은 자연스럽게 커피나무로 흘러갔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커피콩은 대부분 1년 넘은 오래된 콩이다. 2∼3년 된 콩도 부지기수. 원산지의 커피콩 경매는 미국 영국 독일 회사가 쥐고 흔든다. 한국은 1차 경매된 콩이 2∼3차로 유통되는 시장이다. 신선한 콩이 많을 리 없었다.

“커피도 신선식품이에요. 신선할수록 맛있어요. 오래되면 산패되죠. 커피나무를 키우자고 결심했을 때 생각은 정말 소박했어요. ‘직접 커피나무를 키우면 신선한 커피를 마실 수 있겠다. 그럴 수 있다면 진짜 행복하겠다.’ 그거 하나였어요.”

2008년 초 첫 파종 결과는 참담했다. 씨앗의 절반은 싹도 나지 않았다. 그럴 법도 했다. 노씨는 농사라고는 해본 일이 없다. 집에 꽃 화분 하나 키우는 것도 제 손으로는 잘 되지 않았다. 커피를 좋아하는 것일 뿐 농사일에는 무지했다. 커피나무 키우는 데 필요한 건 바리스타의 미각이 아니었다. 농사꾼의 손과 감이었다.

난(蘭) 전문가 노명철씨를 찾아가 도움을 구했다. 그의 조언으로 물이 잘 빠지는 화산토를 모판에 채우고 온도와 습도를 맞췄다. 드디어 씨앗이 발아하기 시작했다. 배양도 시도했다. 이미 싹이 난 커피나무에서 생장점을 잘라낸 뒤 배양병 속에서 키워내는 방법이다. 지난 2년 배양병 속 작은 조직은 떡잎으로, 어린 묘목으로, 성인 나무로 화분을 갈아타며 자라났다. 6만번 넘는 화분갈이 끝에 노씨의 커피나무는 2만4000그루로 늘어났다.

그 전에도, 노씨의 실험이 계속되는 지금도 한국에서 커피 재배는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커피는 인도네시아 자메이카 콜롬비아 브라질 등 남·북위 25도 이내 커피벨트에서만 생산되는 작물이다. 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지면 냉해로 죽는다. 겨울 기온이 영하권인 한반도에서 커피를, 그것도 대규모로 재배할 수 있다고 상상한 이는 없었다. 비닐하우스가 방법이겠지만 채산성이 안 맞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게 상식이다.

노씨는 “따지고 계산했으면 시작조차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제주도에 살지 않았다면 꿈꾸지 못할 일이기도 했다. 전 세계 유명 커피는 해양성 기후 지대와 일교차가 큰 곳에서 성공했다. 더워야 하지만 커피나무는 직사광선도 싫어했다. “제주도라면….” 노씨는 희망을 품었다.

노씨는 올 가을 처음으로 대량 수확을 한다. 그루당 100g씩 1만 그루에 열매가 맺히면 1t(약 9만잔) 수확은 거뜬하다. 그 정도면 많진 않지만 일반 판매가 가능하다. 생산량이 달성되면 그 다음에는 품질 개선이다.

“앞으로 3∼4년 노력하면 인정받겠죠.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나 하와이 코나, 인도네시아 루왁처럼 제주 커피가 세계적 브랜드가 될 날이 올지도 모르죠.”

당장 급한 건 농장 이사다. 나무가 크면서 400평 비닐하우스가 비좁아졌다. 최근 제주시 삼양동에 땅 1700여평을 임대해 비닐하우스를 짓고 있다. 날 풀리는 대로 나무를 옮기고, 봄에는 커피 시음장과 체험장도 만들 생각이다. 관공서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요즘 그에겐 투자 문의가 쏟아진다고 했다. 기업체와 개인 투자자는 물론 제주 농민의 문의까지 이어진다. 감귤 농장이 하향세를 타면서 대체작물로 커피를 생각하는 이들이 생겼다는 얘기다. 하지만 투자는 다 거절이다. 일단 맛있는 커피콩 만드는 일만 생각하기로 했다.

새 농장에서는 진한 커피를 끓일 계획이다. 커피는 사람을 모으고 이야기를 만든다. 그게 커피의 마력이다. 농장에 커피 향이 나면 모든 게 잘될 것 같다.

제주=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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