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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김상근] 카라바조 서거 400주년

[삶의 향기-김상근] 카라바조 서거 400주년 기사의 사진

올 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게 되고 내년에는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게 될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1860∼1911)에 대한 추모의 열기가 뜨겁다.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공연장 곳곳에서 그의 장려한 음악이 연중 연주되고 있으니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올 해로 서거 400주년이 되는 이탈리아 천재화가 카라바조(1571∼1610)에 대한 문화계의 관심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크시대를 열다

카라바조 서거 400 주년을 맞이하는 세계 각국의 관심이 대단하다. 지구촌 곳곳에서 카라바조 서거 400주년 기념 특별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다. 카라바조는 천재 예술가의 전형적인 삶을 살다가 젊은 나이에 타계한,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화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15세기부터 시작되었던 르네상스 시대가 카라바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마감되었으며, 그의 혁신적인 작품을 통해 바로크라는 새로운 미술사조가 출발하게 되었다. 루벤스나 렘브란트와 같은 서양미술사의 거장들은 모두 카라바조 작품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빛과 어두움의 극명한 대비를 이용한 그의 독창적인 조명 기법은 서양미술의 표현 양식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짙은 어둠 속에 배치된 인물에게 한 줄기 구원의 빛이 임하게 함으로써 등장인물의 내면세계를 포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는 로마에서 활동하면서 반종교개혁 시대의 종교성 과잉현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충격적인 주제 선택과 표현 방식으로 세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임종한 성모 마리아를 그리기 위해 물에 빠져 죽은 매춘부의 썩어가는 시신을 모델로 사용했던 그의 파격성은 로마 가톨릭 교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카라바조는 지극한 성(聖)스러움은 결국 지독한 속(俗)스러움에 기초해 있으며, 성과 속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를 추종하던 화가들이 카라바조에게 물었다. 누구에게서 이런 혁신적인 스타일의 그림을 배웠으며 어디서 그런 창조적인 영감을 얻느냐고. 카라바조는 로마 시내를 지나가던 평범한 속인들을 가리키며 “바로 저 사람들이 내 스승이며, 영감의 원천”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진정한 거룩함의 추구란 결국 삶의 일상 가운데서 모색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카라바조는 격정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로도 유명하다. 경쟁 화가들을 무시하는 발언은 예사였고 수차례에 걸쳐 폭행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이탈리아 남부 지역으로 도피하던 그는 사면을 받기 위해 로마로 돌아가다가 400년 전에 홀로 객사하고 말았다.

일상 속에 진정한 거룩함이

아마 빈센트 반 고흐를 제외하면 이처럼 파격적인 삶을 살았던 예술가도 드물 것이다. 그의 격동적인 삶처럼 그의 작품과 죽음이 모두 파격적이었으니, 각국의 문화계가 카라바조 서거 400주년에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우리 국민들의 미술 취향이 인상주의 일색이라 답답하기만 하다. 신문사나 방송국이 후원하는 미술 전시회는 인상주의라는 예술적 편식을 우리 사회에 강요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의 삶이 인상주의 작품들처럼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은데, 왜 우리는 그 가식적이고 인위적인 아름다움에 현혹당하는 것일까?

자기 목을 참수하고,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마지막 초상화로 그렸던 카라바조의 파격을 아직 우리 사회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참혹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은 우리들의 심성이 과다한 인상주의 편식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김상근(연세대 교수·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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