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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식물이야기] 동백 한 그루에 담긴 뜻은

[고규홍의 식물이야기] 동백 한 그루에 담긴 뜻은 기사의 사진

동백나무 한 그루가 새로 천연기념물에 지정됐다. 전남 나주 송죽리 금사정의 동백나무다. 무려 500살이나 된 귀한 나무다. 그러나 세월의 풍상이 비껴간 듯, 사방으로 고르게 가지를 펼친 생김새가 무척 아름답다. 키가 6m나 되고, 뿌리 부분의 둘레도 2.4m나 되는 보기 드물게 큰 동백나무다.

백련사 동백숲이나 선운사 동백숲과 같이 오래 된 동백나무 숲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사례는 있지만, 동백나무 한 그루를 지정한 것은 처음이다.

예로부터 아껴 심고 기르던 나무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때늦은 느낌이다. 금사정 동백나무는 생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보존 가치가 높은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외진 곳에 있는 까닭에 찾아보는 이가 별로 없다. 천연기념물에 지정됐다 해서 이 나무를 찾는 이가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나무를 이 자리에 심은 것은 500년 전인 조선 중종 때였다. 당시 개혁을 추진하던 조광조가 기묘사화에 휘말리자, 그를 따르던 나주 출신 선비들은 피바람을 피해 낙향했다. 나일손, 정문손 등 11명이 그들이다. 이들은 금강십일인계를 조직한 뒤, 모임의 장소로 금사정(錦社亭)을 세우고, 정자 앞에 동백나무를 심었다.

동백나무를 선택한 데에는 뜻이 있었다. 현실 정치에서 좌절한 선비들은 추위가 혹독할수록 더 붉은 꽃을 피우는 동백 꽃의 비장함에 자신들의 처지를 빗대었다. 그리고 사철 푸른 잎을 떨구지 않는 한결같은 나무의 생명력을 닮고 싶었다. 즉흥적으로 동백나무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자연의 흐름에서 삶의 이치를 배우려는 평소의 생활 태도와 신조에서 우러난 신중한 선택이었을 게다.

이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것은 크고 아름답다는 이유에만 있지 않을 것이다.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옛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짚어보고 돌아보게 하는 나무라는 점을 더 귀하게 여긴 까닭이리라. 우리는 예로부터 자연의 이치에 사람살이를 빗대고, 이를 거울삼으며 살아왔다. 순리대로 살라는 가르침은 바로 겨울 가고 봄 오는 자연의 흐름을 느끼고 따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나주 벌판 끝자락에 홀로 서있는 동백나무 한 그루에 담긴 뜻이 무척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이다.

아침 바람 차도 나무는 어김없이 땅 깊은 곳에서 봄 소식 담은 물을 끌어올리는 입춘 즈음이다. 봄 소식에 담긴 옛 사람의 정신까지 생생하게 전해주는 나무의 아우성이 장하다.

고규홍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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