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김지방] 아이티의 진실 기사의 사진

아이티는 정말 악마의 저주를 받은 나라일까. 이번 지진은 그 완결편일까? 한번 살펴보자.

이번 지진은 이미 2년 전 예고됐었다. 당시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열린 지질학회 세미나에는 아이티 정부 관료들도 참석했다. 바로 그해 아이티는 4차례의 허리케인을 겪었다. 닥치지도 않은 ‘지진 따위’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지진을 탐지할 기술 장비도 갖추지 못했다. 가난했기 때문이다.

아이티는 왜 가난한가. 1804년 독립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이티는 프랑스 식민지 중에서도 경제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땅이었다. 아이티를 가난하게 만든 결정타는 프랑스의 배상금 청구였다.

프랑스는 1825년 식민지 상실에 대한 보상으로 당시 프랑스 1년 예산과 맞먹는 1억5000만 프랑을 요구했다. 헷갈리면 안 된다. 프랑스가 아이티에 식민지 배상금을 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티에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 금액은 당시 아이티 독립정부의 연간 수입보다 10배나 많은 금액이었다. 신생 독립국가인 아이티는 교육과 재건, 보건 등에 사용해야 할 정부 수입의 80%를 옛 식민지배국에 고스란히 바쳐야 했다. 2004년 아이티 정부는 프랑스에 ‘식민지 배상금’이 원인무효라며 전액 탕감을 요구했지만 프랑스는 거부했다.

미국도 원죄가 있다. 19세기 당시 미국은 아이티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노예들이 독립을 쟁취한 아이티를 국가로 인정하면, 미국 내 흑인노예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대신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아이티에 무역봉쇄를 단행했다. 아이티 농산물의 수입을 거부했다.

그뿐 아니다. 미국은 1957년부터 86년까지 아이티를 지배한 뒤발리에 가문을 지원했다. 이 기간 아이티의 부채는 17.5배 증가했다. 뒤발리에 가문은 국가부채(7억500만 달러)보다 더 많은 돈(9억 달러)을 스위스 은행 비밀금고에 보관했다. 스위스 은행은 아직 이 돈을 아이티에 돌려주지 않고 있다.

아이티 국민은 지금도 성실하게 빚을 갚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아이티가 상환한 부채는 3억2100만 달러다. 지금도 매년 5000만 달러씩 갚고 있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이 아이티의 부채 탕감에 나선 적도 있다. 이들은 아이티가 국제금융기구에 진 빚 일부를 탕감해주는 조건으로 농업 보조금 철폐, 무료급식 중단 등 ‘시장경제’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는? 아이티 농업은 붕괴됐고, 빈곤층은 더 늘었다. 3모작이 가능한 아이티가 미국에서 쌀을 수입하는 나라로 전락했다. 2008년에는 세계 식량가격이 폭등하면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온 사람들은 빈민으로 전락했다. 이들이 바로 이번 지진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이들에게 누가 ‘악마의 저주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지진 이후 아이티는 무법천지였다지만,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했을 때도 약탈과 강도는 횡행했다.

아이티 재건을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국제금융기관들은 아이티에 막대한 재건 자금을 ‘대출’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미국 프랑스 브라질 푸에르토리코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 등은 재건사업에 참여하겠다고 선심 쓰듯이 얘기한다.

정작 세계교회협의회가 요청한 아이티 부채의 전액 탕감이나, 그동안 프랑스에 갚은 부채를 돌려주라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나라는 없다. 전 세계 시민들이 모금한 아이티 구호자금의 상당액은 다시 부채 상환이나 재건 공사비 등의 명목으로 이 나라를 빠져나갈 것이다.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노예들이 스스로 독립을 쟁취한 나라, 주변 중남미 지역 노예들의 해방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나라, 한국전쟁 당시 한국을 도운 나라 아이티. 이 나라는 또 다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아이티가 여기까지 오도록 만든 건 정말 악마의 저주일까? 그렇다면 그 악마는 어디에 있을까?

김지방 국제부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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