崇禮門, 2월 10일부터 복원 착공, 2012년 말까지 복원 완료 예정 기사의 사진

하나하나 전통 기법으로 창건 당시 원형 살려낸다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서울 남대문로에 큰 불이 났다. 검붉은 연기가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에 화재가 발생했다. 토지 매각 보상금에 불만을 품은 채종기(당시 70세)씨가 석유통으로 불을 질렀다. 화마에 휩싸인 숭례문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잿더미로 변했다.

그로부터 2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 주말 찾아간 숭례문은 아직도 화마(火魔)의 생채기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채씨가 불을 지른 누각 2층 계단은 무너져 내리기 직전이었고, 5층 높이의 전각을 받치는 기둥도 검게 그을린 흔적으로 화재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대변하고 있었다.

국보 1호를 잃어버린 국민들은 참담한 심정에 얼마나 눈물 지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던가. 서울역과 시청 사이 숭례문 가설덧집 외부에 “우리의 자존심 다시 태어나라” “숭례문을 볼 때까지 성원을 보냅니다” 등 글을 통해 응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그동안 복원공사를 위한 준비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해 왔다. 화재 직후에는 불에 탄 목재와 기와 조각 등을 수습하고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했다. 숭례문 육축(陸築·성문을 축조하기 위해 큰 돌로 만든 성벽)의 안정성을 점검했으며 전통 기와 제작 방법도 연구했다.

손상된 목재를 재활용하기 위해 보존처리를 했으며 복구공사를 위한 가설덧집을 설치했다. 복원 공사를 위한 5개 분야의 장인도 선정했다. 대목 분야는 신응수, 단청은 홍창원, 석공은 이재순과 이의상, 기와를 제작하는 제와 분야는 한형준, 기와를 덮는 번와 분야는 이근복씨에게 맡겼다.

1층과 2층으로 이뤄진 문루(門樓)는 2층이 대부분 불타버리고 1층만 남아 있었다. 불에 타면서 목재 이음매가 맞지 않아 문루를 해체해 목재를 하나하나 측정하고 맞춤 기법을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 재활용하는 재목과 새 재목을 함께 조립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목공사를 맡은 신응수 대목장은 현대 장비를 가능한 한 쓰지 않고 옛날 도구를 활용해 전통 기법으로 공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목을 다듬고 손질할 때도 도끼나 대자귀, 내림톱 같은 전통 도구를 사용하고, 목재를 끌어올릴 때도 순수 운반도구인 거중기를 쓰는 식이다. 작업할 때는 한복을 입는다.

불에 타거나 충격을 받는 등 약간 손실이 있는 나무라도 때워서 쓸 예정이다. 공사에 쓸 대형 소나무는 모두 확보한 상태다. 숭례문 기둥과 대들보로 쓸 대경목(굵은 나무)으로 강원도 삼척의 준경묘에서 벤 20그루 가운데 10그루는 광화문 복원에 썼고 나머지 10그루는 건조 중이다. 국민이 기증한 21그루는 벌채해 말리고 있다.

숭례문 복구는 원형과 일제강점기 왜곡된 부분을 회복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 시행된다. 60년대 중수공사 보고서를 기초로 자료를

분석하고 고증 조사를 거친다. 화재에 대비해 방재청과의 협의로 적외선 열감지기, 연기 감지기, CCTV 등 첨단 감지장치를 설치하고 스프링클러 등 소화용 방재설비도 마련할 계획이다.

서까래와 추녀에 박는 못을 만들기 위해서도 특별한 작업이 진행된다. 조선시대와 현대의 철물 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포스코가 당시의 성분대로 철덩어리를 제작하면 공사 현장에 차린 대장간에서 못을 만들게 된다. 성곽은 훼손 전의 사진 등 기록을 바탕으로 남산 쪽으로 88m, 대한상공회의소 쪽으로 16m를 복원할 계획이다.

태조 7년(1398년)에 창건된 후 세종 29년과 성종 10년에 개축된 숭례문은 오욕의 역사만큼이나 숱한 시련을 겪었다. 1907년 일본 황태자가 방한하자 일제는 “대일본의 황태자가 머리를 숙이고 문루 밑을 지날 수 없다”면서 숭례문과 연결된 서울 성곽을 헐어버렸다. 성곽 자리에 도로와 전차길을 내고 숭례문 둘레에 화강암으로 일본식 석축을 쌓았다. 문 앞에는 파출소와 가로등을 설치했으며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1934년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보물 1호로 숭례문을, 보물 2호로 동대문을, 보물 3호에 원각사지십층석탑을, 보물 4호로 보신각종을 지정했다. 이후 62년 한국 정부는 조선총독부의 문화재 지정을 참고해 숭례문을 국보 1호, 원각사지십층석탑을 국보 2호, 동대문을 보물 1호, 보신각종을 보물 2호로 각각 지정했다.

2002년 2월 문화재위원회는 서울시의 숭례문 근접 관광 계획을 허가하지 않았다. 차량으로 인해 관람객이 위험에 처할 수 있고 복잡한 도로 사정으로 숭례문을 차분하게 감상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리고는 2003년 서울 성곽을 숭례문 좌우로 10m씩 복원했다. 2006년 3월 1일, 1907년 일제에 의해 출입금지된 숭례문이 99년 만에 일반에 개방이 결정돼 3월 3일부터 일반인 출입이 가능하게 됐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숭례문 원형대로 대한상공회의소 쪽으로 성곽을 더 늘리고 성곽 아랫 부분에는 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면서 “이 경우 성곽 모양이 달라질 수 있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2년 12월 복원될 숭례문은 조선시대와 현대사를 관통하는 상징의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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