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인사이드-전정희] 빈티지 지방청사 기사의 사진

1517년 중종 임금이 말했다. “대저 옛 관사가 혹 퇴폐(頹廢)했으면 수보(修補)하는 것이야 옳지만, 수개(修改)하되 웅장하고 사치스럽게 하면 그 폐해가 반드시 백성에게 미칠 것인데 하물며 누관(樓觀)과 정사(亭?)를 새로 창건하여 유관(游觀)의 장소를 삼음에랴? 헌부에서 추치하는 것이 마땅하다.”

중종이 사헌부로부터 지방관들의 호화 청사 건축 비리를 보고 받고 벌로 다스리라고 엄명한 대목이다. 중종이 지적한 누관은 지금의 스카이라운지, 정사는 피트니스센터로 풀이될 수 있다. 사헌부는 경상우도 병사 조윤손, 전라좌도 수사 김세희, 온성(穩城) 부사 신옥형이 “극도로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관청을) 지어 백성의 원망을 샀다”고 아뢨다.

당시 조윤손은 성 안에 대(臺)를 쌓고 정자를 지었다. 앞서 좌도 수사로 있을 때도 정자를 짓느라 공역(功役)을 일으켜 공분을 샀다. 태풍에 날아갔지만 말이다. 김세희와 신옥형은 각기 제포첨사와 경상좌도 수사로 있을 때 대청을 궁궐 버금가게 지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같은 지방관들의 비리가 꼼꼼하게 적혀 있다. 1450년 단성 현감 양금석은 관사를 조성한다는 핑계로 백성에게 큰 재목을 바치도록 강요했다. 바치지 못하는 자에게는 면포를 징수해 탐관오리의 전형을 보여줬다. 1724년 광양 현감 구문영 역시 관사를 수리한답시고 금송(禁松)을 얻어내려 획책하다 적발됐다.

2009년 말 이명박 대통령이 말했다. “일부 지자체의 호화 청사를 에너지 효율이 높게 뜯어고치든지 비용이 많이 들면 아예 민간에 팔아넘기고 다른 데로 가도록 해야 한다. 호화 청사 단체장들은 지방선거에서 심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 구청 건물을 쓸데없이 오페라공연장처럼 로비 천장을 높게 짓고 유리로 만들 필요가 있느냐.”

호화 청사란 비난을 샀던 성남과 용인시 등의 단체장은 이 얘길 듣고 어떤 심정이었을까? 대통령은 불호령의 메시지를 에둘러 전했지만 그들은 짐짓 못 들은 척이다. 그리고 올 들어 안양시장이 ‘랜드마크’를 앞세워 100층 이상의 초고층 청사 계획을 밝혔다. ‘누관’과 ‘정사’ 외에 문화공간 등도 갖춘 복합건물이다. 주거용도 있다고 한다. 바벨탑과 같은 현대판 성채다. 안양시와 같은 호화 청사 단체장은 한결같이 랜드마크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세운다.

사실 도시 건축은 경제를 위한 문화환경의 조성이다. 따라서 건물을 유별나게 꾸미는 것은 도시환경장치를 문화화하는 것이다. 이 문화화 과정, 다시 말해 이벤트 효과의 극대화는 장사를 하려는 취지다.

한데 민간인도 아닌 지방관들이 청사 건축을 통해 직접 장사를 하겠다고 나선 발상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즉 성채를 건설하면 성채 안에는 그들만의 자족 기능이 있어 시민의 생활과 동떨어지게 된다. 되레 ‘빨대 효과’로 서민을 빈곤에 몰아넣는다. 인근 사람들이 100층 내 싼값의 커피숍과 식당, 쇼핑 및 헬스 센터를 이용하다 보면 서민 상권이 무너진다. 새로운 착취다.

반면 지방관은 도시문화 개선을 내세운 ‘랜드마크 판타지’를 유권자에게 주입하며 재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 럭셔리한 근무환경에서 치적을 자랑할 것이다. ‘동헌 뜰에 곡식 널고 원님이 새 본다’는 옛말은 이런 데서 나왔다.

그러기에 좌찬성 김안국이 중종에게 직언했다. “백성의 원망을 쌓으면서 집을 짓는다면 오랜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집을 제도에 맞게 짓고 사치스럽거나 크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역사(役事)는 하나같이 백성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정 도시 문화환경 개선을 위해 랜드마크가 필요하다면 낡아빠져 허물어져 보이는 빈티지 지방청사로 눈에 띄게 하는 역발상을 해보라. 이른바 영국식 건축학의 점경(點景)이다. 새 보려 말고….

전정희 인터넷 뉴스부장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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