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명숙] 비정규직 과학자에게 연구공간을 기사의 사진

필자는 여성이면서,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순수기초과학을 전공했다. 취업에 불리한 심각한 약점을 1개도 아니고 3개씩이나 갖추고 있는 셈이다.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이공계 대학에 재직 중인 정규직 과학기술인력 중 여성 비율은 11.8%에 불과하다. 이처럼 열악한 현실에서 필자가 대학에 취업하는 것은 실현가망 없는 무모한 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박사 후 연수과정을 끝낸 뒤 시간강사 자리조차 구할 수 없었던 막막함, 시간강사 자리를 얻은 후 겨우 유사전공 교수님 실험실에서 연구를 계속하게 됐지만 무보수 생활의 힘듦과 연구인으로서의 자존감 상실, 임신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의 위협 등은 대학에 취직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싶게 만들었다.

열악한 여성과학자 환경

국내 여성과학자 대부분은 나와 같은 어려움에 부딪치며 좌절하게 된다. 국내 박사 후 연수사업의 문은 좁고, 단독 연구비와 연구교수라는 신분을 확보하는 행운을 얻더라도 그 기간이 지나면 다시 무보수 연구 신분으로 돌아가게 된다. 여성이 짊어지게 되는 임신과 육아를 거치며 쌓아올린 성과에 대한 인정도, 이를 지속할 수 있는 기회도 너무 적은 것이다. 국내 여성 이공계 석박사들, 그것도 순수기초과학 전공 여성들의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무보수로라도 연구를 계속하려 해도, 비정규직 신분의 연구원에게는 어떤 종류의 연구공간도 제공되지 않는다. 과학자가 연구에 매진하기 위해서는 연구비와 연구공간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연구비는 그동안 쌓아온 업적으로 다시 신청해 선정되면 해결 가능성이 있으나, 연구공간 확보는 지금 제도로는 불가능하다. 필자의 경우 그다지 넓은 공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조금만 생각을 바꿔 연구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배치하면 보다 많은 국내 박사들에게 공간을 제공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이 실행되지 않는 것이다. 연구비 지원과 연구 공간 확보라는 필수불가결한 조건 충족 자체가 힘든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의 대계를 짊어지는 순수기초과학 분야의 융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같은 현실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해 기초과학연구소 공간을 개방할 것을 제안한다. 전국의 4년제 대학마다 개설돼 있는 기초과학연구소를 십분 활용하자는 것이다. 필자가 방문했던 말레이시아의 한 사립대학은 전임강사부터 시간강사까지는 매우 큰 공간에서 각자 책상만 갖고 함께 생활하고, 실험실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초과학연구소는 넓은 공간과 좋은 설비를 구비하고 있음에도 비정규직에게는 개방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연구 공간 확보가 누구보다도 절실한 비정규직 과학기술인들, 연구에 대한 능력과 집념이 있지만 척박한 현실 앞에서 주저앉아야만 하는 비정규직 박사들에게 연구공간을 제공한다면,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한 단계 도약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초과학연구소 개방해야

박사 학위를 받은 지 14년 만에야 필자는 지방에 있는 국립대학에 조교수로 임용될 수 있었다. 14년은 순수기초과학을 전공한 국내 여성박사가 대학에 교수로 취직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이 긴 세월동안 그 어려웠던 시간과 난관 앞에서 무릎 꿇지 않고 버티기를 잘했고, 마지막까지 순수기초과학 전공을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큰 산이 가로막 듯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비정규직 과학기술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국가는 이들을 격려하고, 일으켜 세워야 한다. 미래 과학선진국은 기초과학의 토양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과학기술인들에 대한 생각의 전환과 보다 실제적이고도 즉각적인 정책적 지원을 기대해본다.

김명숙 제주대 교수 생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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