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제발 막말 그만하시고… 기사의 사진

“민법 형법 등은 아주 쉽게 통과시키던 의원들이 학교 개학시기를 두고는 몇 달이나 논쟁을 벌였지. 법률은 어렵단 말이야. 그런데 개학문제는 대부분의 의원들이 아는 일이었거든. 개학하는 달을 당기면 너무 춥고 밀면 너무 늦어져서 곤란하고…. 초등학교는 나온 사람들이었으니까.”

40년쯤 전에 강의실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자신도 의원 경력을 가진 교수님이었다. 그래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의정에 대한 이분의 실망은 대단했고 표현 방식은 아주 시니컬했다. 건국 초기의 국회가 정말로 그랬는지, 아니면 강의 효과를 감안한 약간의 과장이 섞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지금도 국회는 그 모습 그대로다.

세종시, 잘 아니까 떠든다?

여전히 민생은 어렵고 특히 청년들이 취업난에 기죽어 있는 때다. 무쇠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도 서민들의 팍팍함을 넘어 단내까지 나는 생계난을 생각한다면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질 일이다. 그러잖아도 국회의원 가운데는 세종시 문제 때문에 비분강개하거나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 없지 않았다. 삭발투쟁에 나선 의원들도 있었던 것 같고…. 그런데 진실로 국민의 살림살이 걱정 때문에 밤잠 설치는 의원, 눈물 흘리는 정치지도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마음을 휘젓는 서운함 배신감을 금할 길이 없다.

거듭 하는 말이지만 세종시 계획 수정 여부는 진리 찾기가 아니다. 정책적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애초에 잘못된 공약이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헌재가 위헌결정을 내렸을 때 천도 계획 자체를 거둬들이는 게 순리였다. 대통령 당선의 의미를 너무 부풀려 보았거나, 공약에 지나치게 구애되었던 탓이라고 여겨지지만 어쨌든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대안은 안 만드는 게 훨씬 나았다고 본다. 군색한 대안, 억지스러운 집착이 마침내 정치인들을 검투사로 만들어놓고 말지 않았는가.

게다가 이제 여야의 싸움은 오히려 뒷전으로 밀리고 한나라당 내, 여권 내의 대결이 더 치열하다. 경쟁적으로 말에 예리한 날을 세우고 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게 아니라 단어 하나로 불공대천의 원수를 만들 것 같은 분위기다. 높고 점잖은 분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때 아닌 ‘강도(强盜)’논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어느 쪽 할 것 없이 마음에 피가 번질 것 같아 지켜보는 사람까지 좌불안석이다.

말의 칼날에 피 흘리는 정치

대의정치란 결투나 전쟁이 아닌 대화와 타협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예지와 이성의 정치제도적 표현이다. 이 대의민주정치의 원리에 맞춰 말하자면 어떤 문제든 의회가 수렴해서 정당 간 의원 간의 대화와 토론과 타협으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게 순리다. 그런 과정이 무시되면 대의정치는 존립할 근거를 잃고 만다. 정당의 역할도 분명하다. 국민의 의견을 정강정책에 맞춰 정리하고 정제해서 자당의 안으로 의회 논의의 장에 내놓는 것이다. 그것을 넘어 국회점령군 행세를 한다면 이런 정당은 정치적 해악이다.

상식을 장황히 말하는 것에 화가 나신다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왜 실천을 못하시나요?”

세종시 문제의 해법이라고 다를 까닭이 없다. 충분히 정부와 각 정당 및 정파의 입장과 인식과 대안이 피력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험악한 말싸움 그만하고 국회에서 작지만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대화하고 토론할 일이다. 그런 다음 국회의 의사결정방식에 따라 결론을 내리면 된다.

일전에 국회TV를 통해 본 본회의 대정부 질문 장면이 생각난다. 30대 초선 김세연 의원의 경우다.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질문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도 물을 건 다 물었고 자기 할 말도 다했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국회의원, 국무총리, 국무위원들 모두 학식 인격 덕망이 높은 분들이다. 작은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다고 해서 못 알아들었을 리 없다.

경험이 많고 지위가 높은 정치인, 싸움판을 키워놓는 데 이력이 난 정쟁 흥행사 여러분, 후생가외(後生可畏)라고 하던데 이 젊은이에게서 배울 게 있다는 생각 혹 안 드십니까?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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