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손영옥] 접속의 시대, 명절 생존법 기사의 사진

바야흐로 접속의 시대다. 포스트 모던한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을 미국의 사회비평가 제러미 리프킨은 이렇게 정의하면서 ‘소유의 종말’을 선언했다. 재산도 중요하지만 이제 연결된다는 게 더 중요해졌다. 규모의 경제에서 속도의 경제로 바뀐 상황에서 쌓여가는 자산은 변신의 걸림돌이다. 기업은 자산을 소유하기보다 시설을 리스하고, 인력을 아웃소싱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별장으로 소유했을 경치 좋은 곳의 부동산을 지금은 콘도 이용권으로 대체하는 식이다.

접속의 시대, 또 다른 특징은 경험의 상품화다. 실제 주변에서 오지 탐험이, 외국 명문대 진학 경험이, 성공한 귀농이 책으로, 다큐로 팔려나가는 사례를 무수히 목격한다. 그뿐인가. 인간관계도 상품화됐다. 미국에서는 ‘CIDs(공동관심단지)’라는 새로운 주거형태가 확산되는 추세다. 이곳은 담과 울타리, 대문이 있으며, 외부인 출입은 철저히 통제된다. 주민들은 거주 공간은 소유하지만, 공원 도로 주차장 수영장 테니스장 오락센터 등은 공유한다.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와 부를 갖춘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고품격 공동체를 보장받을 수 있다. 마을도 이젠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돈만 주면 통째 살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접속의 문화가 번성할 수 있는 배경엔 시간 부족이 있다. 삶이 점점 바빠지면서 가치가 절상되는 것은 시간이다. 별장은 얼마나 관리하기가 힘든가. 하지만 콘도 이용권을 사면 모든 것을 알아서 관리해주니 그렇게 편리할 수가 없다.

시간이야말로 자산이 된 21세기에 귀성·귀경 전쟁을 마다않는 우리의 설 풍경은 그래서 아이러니다. 그건, 역(逆)으로 결코 상품화할 수 없는 가족 문화의 가치를 보여준다. 이번 설에도 민족대이동이 있었다. 상품이 아니라 기억까지 파는 시대라지만, 가족이 주는 위로와 푸근함, 그리고 어머니의 품을 무엇이 대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서울에서 고향까지 달려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혹독하다. 꽉 막힌 도로에서 오금도 펴지 못한 채 때로는 10시간 이상을 운전해야 한다. 올해는 특히 설 연휴가 짧았다. 이런 상황에서 마트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주부, 일자리가 불안한 비정규직, 연휴를 모두 쉬지 못하는 직종의 샐러리맨 가장에게 전통을 지키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기를 쓰고 부모님 앞으로 달려가는 것은 피붙이가 주는 위무의 힘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고생 끝에 도착한 고향에서 누군가는 ‘명절 증후군’을 앓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대체로 이 땅의 주부들이다.

수년 전 연수시절, 미국 시골 가정에서 며칠 묵으며 추수감사절을 보낼 기회를 가졌다. 같은 학교 미국인 친구가 우리 가족을 부모가 살고 계시는 뉴욕 주의 고향으로 초대해 준 것이다. 워싱턴DC로 오는 귀경 길, 도로에서 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한 것을 보면 미국인들에게도 고향의 의미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부모 마음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았다. 그 친구 부친은 시종 자식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그때 표정엔 뿌듯함이 넘쳤다.

그런 그 친구의 부친은 60대임에도 앞치마를 두르고, 추수감사절 요리를 도맡다시피 했다. 맞벌이라 평소에도 요리를 자주 하신다고. 만찬에는 음식 냄새가 흘렀고, 이야기가 넘쳐났다. 그날의 손님은 외지에 사는 그 친구 형제와 그들의 여자친구들, 백부와 백모, 부친 회사의 직원 가족과 우리 가족이었다. 그렇게 흐뭇한 추수감사절을 보내면서 나는 우리 명절 문화의 대안을 보았다.

접속의 시대, 상품화할 수 없는 명절 가족 상봉이 존재의 빛을 발한다. 그 문화를 가꿔가려면 모두에게 즐거움이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고역인데, 누군가는 전통을 들이대며 무심하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남편이 차남임에도 내가 설과 추석 등 명절을 돌아가며 준비하기로 기꺼이 자청한 것은 모두에게 행복한 명절이 되도록 하기 위한 나름의 실천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