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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발견] 망울과 열매의 대화

[계절의 발견] 망울과 열매의 대화 기사의 사진

오래전 전남 구례의 산수유 마을을 찾았을 땐 김소월의 산유화 분위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웬걸, 마을 초입에 들어서니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진동했다. 장정 여럿이 깡마른 개울가에서 진짜 돼지를 잡는 중이었다. 동네에 잔치가 있다고 했다. 돼지 소리 요란한 가운데서 산수유 꽃은 소리 없이 피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동식물과 더불어 그렇게 건강한 야생의 삶을 살고 있었다.

자연이 바통 터치를 한다. 고드름이 영롱한 자태로 낙하하는 사이, 햇살과 바람은 산수유의 꽃망울을 만들었다. 3월의 개화를 예비하는 것이다. 산수유 꽃은 창백하듯 노랗고, 산수유 열매는 투명하듯 붉다. 꽃은 한겨울 삭풍을 이겨낸 봄의 전령이어서 귀하고, 잎이 떨어진 가을, 산수유 열매의 향연은 황홀하다.

꽃망울 왼쪽에 산수유의 쭈그러진 열매가 보인다. 가을에 수확되지 못한 열매는 슬프다. 새 망울과 헌 열매가 가늘어진 고드름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고 있다. 우리의 봄은 치열한 야생의 순환이라고, 저 허무한 고드름 또한 그러하리라고.

손수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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