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기자·로버트 박 송환 ‘해결사’ 역할… 평양은 스웨덴 대사관으로 통한다 기사의 사진

“죄송합니다.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We follow the firm line not to take part in interviews).”

지난 12일 돌아온 답변은 한결같았다. “대사관에서 일하는 북한 사람이 있는가?” “북한에 거주하는 스웨덴 사람은 몇명인가?” 민감하지 않은 질문에도 그들은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평양시 대동강 지구 대학로 문수동에 자리 잡고 있는 스웨덴 대사관의 이메일 답변이었다.

북한의 對서방 창구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관은 지난해 3월 뉴스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미국 여기자 2명이 북한에 억류됐을 때다. 당시 미국은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가 미국을 대신해 여기자들을 만났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25일 인권운동가 로버트 박이 자진 월북했을 때도 스웨덴 대사관은 미국을 대신해 움직였다. 세계의 눈은 스웨덴 대사관으로 쏠렸다. 그런데 왜 이곳이 미국의 대리 역할을 하는 걸까?

북한 수교국은 160개국이다. 북한 내 상주 공관은 35개다. 이 중 대사관은 24개. 대부분 중국 러시아 베트남 루마니아 등 사회주의 계열 국가다. 북미와 서유럽 국가 중엔 스웨덴 독일 영국이 전부다.

스웨덴은 반제국주의 노선을 걸으며 1974년 북한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고, 이듬해 3월 서방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평양에 대사관을 열었다. 2000년대에 대사관을 둔 영국(2000년 12월), 독일(2001년 3월)과는 차원이 다르다.

북한 주재 초대 스웨덴 대사를 지낸 에릭 코넬은 저서 ‘공산치하 북한-낙원 사절의 보고(North Korea under communism:report of an envoy to paradise)’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자유세계의 자유란 굶을 수 있는 자유’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던 시기였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북한은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지 겨우 20년 만에 먹거리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두 나라가 가까워진 배경

스웨덴이 북한과 수교를 맺은 데엔 경제적 이유가 작용했다. 70년대 초 북한은 비공산권 국가들과 무역을 확대했다. 경제개발을 위해 수십억 달러를 들여 서유럽과 일본에서 공장설비 등을 수입했다. 스웨덴은 주요 수입국 중 하나였다.

“스웨덴 수출회사들이 평양에 대사관을 개설하자고 먼저 제의했다. 수억 스웨덴 크로나(스웨덴 화폐)에 달하는 공장설비 계약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대사관 마련을 위한) 준비작업도 스웨덴 수출위원회가 도맡았다. 위원회는 대규모 산업박람회 평양 개최를 준비 중이었다.”(‘공산치하 북한-낙원 사절의 보고’ 9쪽)

스웨덴과 북한의 경제교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줄어드는 중에도 스웨덴은 금액을 늘렸다. 유엔과 국제 구호단체를 통해 전년보다 75% 증가한 약 7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지난해 대북 지원에 동참한 국가 중 가장 큰 금액이었다.

정치적으로도 스웨덴과 북한의 관계는 긴밀하다. 2001년 유럽연합(EU) 의장국이 된 스웨덴은 그해 6월 요한 페르손 총리가 EU 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을 찾았다. 2005년에는 스웨덴 총리의 정치특사가 방북했다.

현재 스웨덴 정부는 북측 경제학자 등 주요 인사들을 초청해 시장경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자유시장과 사회주의를 혼합하는 중국식 모델에는 관심이 없다. 스웨덴식 모델에 마음이 끌린다.” 2000년 10월 방북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개혁 개방 모델로 스웨덴을 꼽은 바 있다. 스웨덴과 북한의 ‘특별한’ 역사적 관계를 안다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발언이다.

미국 대변자 역할도

“그곳엔 미국 대사관이 없습니다. 의료적·영사적 응급상황이 발생한 미국인은 스웨덴 대사관을 찾으세요.” 미국 국무부가 해외여행 안내문 ‘북한’ 코너에 달아둔 설명문이다.

스웨덴이 북한에서 미국의 이익대표국(the protecting power·적국 영역 내에 있는 자국민의 이익보호를 위탁한 나라)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사업무를 대행하면서 미국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캐나다와 호주의 이익대표국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하면 여기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We find doing so incompatible with the task we are carrying out here).” 매츠 포이어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가 인터뷰를 거절하며 덧붙인 답변이다. 주한 스웨덴 대사관 측은 “(북한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고 있는 거의 유일한 서방 국가의 대사관이다 보니) 전 세계로부터 문의가 엄청나게 쏟아진다고 한다”고 전했다.

로버트 박 입북 직후 미국을 대신해 그의 억류 사실을 파악한 것도 스웨덴 대사관이었다. 박씨를 직접 만나 안전도 확인했다. 결국 지난 5일 북측 연락을 받았다. “로버트 박을 석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거의 유일한 서방 창구로서의 임무 하나가 종료되는 순간이었다.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