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이근식] 보수·진보 협력을 기사의 사진

“진보주의자들은 모두 사회주의자이거나 공산주의자다.” 이 말은 얼마 전 공개 대중강연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보수 논객 한 분이 한 말이다. 그러면 남자는 모두 늑대이고, 여자는 모두 여우라는 말인가? 이 말은 백해무익한 이념 대립을 조장하여 우리 국민들 간에 증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섬뜩한 정치적 선동이다.

진보주의자 중에는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도 일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처럼 진보주의자들은 대부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반대한다. 우리나라 진보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사회·공산주의와 다르다



현대의 진보주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분명히 다르다. 우선 정치적으로 진보주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지하고 개인이나 특정 집단에 의한 독재를 결연히 반대하는 반면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이 점이 불분명하다. 사회주의자 중에는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도 많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회주의자들도 더러 있으며, 공산주의는 공산당의 일당독재를 필수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힘들다.

경제체제와 관련해서 보면 진보주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혼합된 수정자본주의를 지지하는 반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전면 부정하고 사회주의경제나 이의 극단적 형태인 공산주의경제를 지지한다. 자본주의경제란 사유재산제도에 기초한 시장경제를 말하며, 사회주의경제란 공장이나 농장과 같은 생산수단이 협동조합과 같은 민간단체나 지방정부에 의해서 공유되고 생산과 분배가 이들 단체를 단위로 공동으로 행해지는 경제를 말한다. 공산주의는 극단적 형태의 사회주의경제로서 생산수단의 소유와 생산 및 분배가 모두 하나의 중앙정부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는 경제를 말한다.

다시 말해 진보주의란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하면서, 불황과 실업, 빈곤, 환경과 같은 시장경제가 잘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인정하는 수정자본주의를 지지한다. 반면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통일된 견해가 없고 경제체제로는 자본주의경제를 부정하고 사회주의경제나 이의 극단적 형태인 공산주의를 지지한다.

이처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진보주의를 통상의 혹은 협의의 진보주의라고 부를 수 있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진보주의를 광의의 진보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현대에서 진보주의자는 대부분 협의의 진보주의자이다. 나를 포함하여 우리나라의 대부분 진보주의자들도 그러하다. 그런데 졸지에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라고 매도되니 황당하다.

우리나라는 남북이 분단되었고 6·25를 겪었다는 특수성 때문에 이념대립이 심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이념대립이란 원래 비생산적인 것이므로 없을수록 좋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근래 진보와 보수 간에 이념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데에는 목소리 큰 지도층 인사들, 특히 보수쪽 인사들의 선동의 탓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선동은 혈기, 객기와 치기가 넘치는 젊은이나 하는 것이지 환갑 넘은 분이 할 일이 아니다.

지혜와 이상 똑같이 중요

보수와 진보는 서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협력하여야 한다. 우리 사회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보수의 지혜와 진보의 이상이 모두 필요하다. 현실에 안주하는 보수주의자들로만 가득 찬 사회는 정체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며, 현실적 고려 없이 꿈만 좇는 진보주의자들만으로 추진되는 개혁은 시행착오를 면치 못할 것이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 상생하고 협력하도록 옆에서 거들어 자손들에게 더 좋은 우리나라를 물려주는 것이 나이든 분들이 할 일이 아닐까?

이근식 서울시립대(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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