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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김상근] 탈락 논문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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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의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처음 귀국했을 때, 논문 쓰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학술 연구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논문은 어떻게 쓰는 것인지,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호기가 탱천할 때였다. 학자에게는 귀국하고 발표하는 첫 논문이 매우 중요하다. 연구자로서의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첫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야심작으로 준비한 논문을 어느 신학 학술지에 기고했는데, 심사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충격적인 결과였다. 심사에서 떨어진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심사 위원들이 쓴 평가서 내용이 더 충격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처음 수행한 연구논문은 한국여성의 출산율(Fertility Rate) 저하 현상이 초래할 한국교회의 미래를 전망하고, 이 화급한 문제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론적 논거’ 박약이 이유

한국 여성의 출산율 저하와 이에 따른 인구 감소는 노령화 시대 진입과 더불어 우리 한국 사회가 뇌관처럼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다. 고국으로 돌아와 새로 학문을 시작하는 신진학자로서 한국 교회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쓴 논문이었다. 그런데 그 탈락된 논문에 대한 심사평은 “신학 논문이 추구해야 할 이론적 근거가 박약”하다는 것이었다. 우수한 논문은 고상한 “이론적 논거”에 따라서 전개되어야만 한다는 학문적 선입견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대개 이런 학자들에게 ‘이론적 논거’라 함은 서양 사상가가 발전시킨 논의의 틀을 말하거나 외국 학자들이 연구해 놓은 결과물을 적당히 버무려 ‘한국적 상황’에 적용하는 형식을 통칭한다. 인구 감소나 노령화 문제와 같은 구체적인 현상을 논하지 말고 플라톤이나 토머스 아퀴나스와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의 거대 담론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학문은 세상과의 소통을 요구한다. 내가 공부하는 신학이라는 학문은 세상과의 소통이 더욱 중요하다. 절대로 ‘이론적 근거’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론적 근거’가 중요하다고 해도 세상과의 소통을 추구하는 신학이라는 학문의 특수성을 우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론적 근거’를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가 20∼30년 후에 직면하게 될 실질적인 문제에 주목했고, 필연적인 외국인 노동자 수입에 따른 한국교회의 글로벌 목회, 여성의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가정 목회, 노령화 사회를 위한 미래적 목회를 제안했었다. 그러나 내가 쓴 첫 논문은 심사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새삼스럽게 부끄러운 과거의 일을 거론하는 것은 스스로 망가짐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는 허튼 수작이 아니다. 한국 기독교를 대표해 온 강남에 있는 한 교회가 경이로운 예산으로 새로운 교회당을 건축한다고 해서 말들이 많기 때문이다.

고령화사회에 적합한 목회

거두절미하고 이미 오래 전에 탈락했던 내 논문의 논지를 빌려 말한다면, 앞으로 20∼30년 후의 한국교회는 그렇게 큰 교회당 건물이 필요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 개신교인의 감소 속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금도 젊은 세대의 빠른 이탈이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진정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목회자라면 교회당 건물의 사이즈와 같은 하드웨어보다는 미래 목회를 준비하는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을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는 그 교회 건축 문제에 대해서 내게 묻는다. 신학생들은 무슨 반대 성명서 같은 것을 발표해야 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이미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 탈락한 논문에 다 썼기 때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김상근 (연세대 교수·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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