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염성덕] 졸업상품권의 진정성 기사의 사진

“콩을 심은 플라스틱 화분을 40개 선물했지. 3만원 정도 들었나. 화분을 받은 꼬마들은 떡잎이 성장하는 걸 보고 생태일기를 썼대.”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의 어린이날 선물로 급우들에게 플라스틱 화분을 돌렸던 한 선배가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 큰아들과 반 친구들에게 기억에 남는 선물을 뭘로 할까 고민하던 기자는 무릎을 탁 쳤다. 이 정도면 뇌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동네 꽃가게와 문방구점에 플라스틱 화분을 30개 남짓 주문했다. 그러나 어린이날이 이틀밖에 남지 않아 곤란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고민 끝에 제과점 빵을 선물하기로 했다. “빵을 2개씩 포장해 주세요. 누가 선물했는지는 비밀이에요.” 제과점 주인에게 신신당부했다.

제과점 주인은 빵을 보낸 학부모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 받지 않겠다는 선생님의 완강한 반대에 부닥쳤다. 그는 선생님에게 기자의 큰아들 이름을 말하고 말았다.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며 빵을 받았단다. 선생님은 꼬마 친구들을 하나씩 불러내 안아주며 빵을 한 봉지씩 나눠줬다. 영문도 모르는 큰아들은 신이 나서 집으로 뛰어왔다. “엄마, 선생님께서 어린이날 선물로 모두에게 빵을 주셨어요.” 큰아들은 동생과 빵을 나눠먹으며 무척 행복해했다.

거의 동시에 제과점 주인은 이름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며 미안하다는 전화를, 선생님은 고맙다는 전화를 했다. 선생님은 꼬마 친구들에게 고루 사랑을 베풀었던 것으로 아이들은 기억한다. 기자는 성년이 된 큰아들의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 학부모를 초청한 자리에서 촌지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례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 학교 교장은 취재를 하지 말아 달라고 통사정했다. 대부분의 교사가 촌지를 받지 않는데, 한 교사의 이야기만 보도되면 다른 교사들이 오해할 수 있고, 교사들 사이에 위화감이 조성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제보해준 학부모의 이야기만 듣고도 기사를 쓸 수 있다고 했더니 교장은 자신이 배석한 가운데 인터뷰를 하라고 요구했다. 발언 수위를 조절하겠다는 심산이었다. 교장을 설득해 1학년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담임선생님과 책걸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책걸상이 무척 작았다. “촌지를 받지 않을 겁니다. 저 모르게 촌지를 놓고 가시면 돌려줄 겁니다. 어느 학생이나 차별하지 않고 사랑으로 대할 겁니다.”

촌지사절을 선언한 담임선생님의 이야기가 본보에 조그맣게 소개됐지만 반향은 상대적으로 컸다. 교육부(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전화해 담임선생님을 치하했고, 그 학교에 격려전화도 많이 걸려 왔다고 했다.

기자는 큰아들 초등학교 졸업식 때 담임선생님과 큰아들이 인사하고 싶다는 선생님 두 분을 찾아가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작은 선물을 전달한 적이 있다. 부모로서도 떳떳했고, 선생님들도 떳떳했다고 자부한다. 유치원을 졸업한 자녀를 초등학교에 보낸 학부모의 심정이라면,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을 편애하지 않고 친부모처럼 돌봐준다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인사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졸업하는 마당에 말이다.

서울 중랑구의 한 초등학교 졸업생 아버지가 최근 서울시교육청 공보담당관실로 10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과 감사편지를 보냈다. “열정과 사랑으로 제자를 대하시는 선생님을 만나면서 교육계에 대한 불신이 사라졌습니다. 어느 학생도 편애하지 않고 사랑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장점을 찾아내 격려해 주셨습니다. 고마움을 달리 전할 방법이 없어 이렇게 합니다….” 시교육청은 감사담당관실을 통해 등기우편으로 졸업생의 아버지에게 상품권을 돌려보냈다.

일각에서는 졸업생 아버지의 진의를 의심하기도 했다지만 사랑하는 자녀를 놓고 교사나 교육기관을 상대로 무모한 짓을 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졸업생의 아버지는 자식을 편애하지 않고 가르쳐 주신 담임선생님에게 최소한의 정성을 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염성덕 사회부장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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