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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식물이야기] 꽃송이에 담긴 풍년의 조짐

[고규홍의 식물이야기] 꽃송이에 담긴 풍년의 조짐 기사의 사진

봄은 봉오리가 가장 먼저 불러온다. 활짝 터진 ‘풍년화’ 꽃망울이 봄 길잡이의 맨 앞자리에 나섰다. 4장의 가느다란 꽃잎이 삐뚤빼뚤 꼬인 리본처럼 조롱조롱 피어나는 풍년화 꽃은 볼수록 재미있다. 잎 나기에 앞서 피어나는 풍년화 꽃은 여느 꽃들처럼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가녀린 꽃잎이 가혹했던 지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낸 안간힘의 흔적이지 싶어 더 귀하게 여겨진다.

풍년화에 속하는 식물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종류마다 꽃 모양이나 색깔이 약간씩 다르다. 노란 꽃을 피우는 풍년화가 많지만, 자줏빛으로 피어나는 꽃도 있다. 꽃송이가 탐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가지 전체에 빽빽이 피어나기 때문에 멀리에서도 풍년화의 꽃잔치는 한 눈에 뜨인다. 꽃이 화사해서 관상용으로 환영받는 나무다. 게다가 5m쯤밖에 안 되는 키 작은 나무여서 정원에서 키우기에도 알맞다.

독특한 꽃을 피우는 이 나무에는 왜 풍년화라는 이름을 붙었을까. 풍년은 농촌 살림살이에서 가장 절실한 바람이다. 한 해를 시작하는 이 즈음, 농촌에서는 풍년을 이루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쏟는다. 겨우내 묵혀 두었던 농기구를 정성껏 손질하고 새로 심을 씨앗을 보살피는 건 물론이고, 풍년을 기원하는 마을 잔치를 벌이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자연의 힘에 기대지 않을 수 없는 농부들은 또 주변의 자연물에 소망을 담기도 했다. 나무의 잎이 한꺼번에 돋아나거나 꽃이 활짝 피어나면 풍년이 든다고 생각해온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한창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설레는 이른 봄, 평범하지 않은 모습으로 피어나는 풍년화 꽃을 사람들은 상서로운 조짐으로 받아들였다. 야릇한 모양의 풍년화 꽃이 일찌감치 예쁘게 피어나면 올 농사에는 사방에 풍년이 들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흐르자 아예 이 나무를 ‘풍년화’라 부르면서 이 꽃의 개화를 기다렸다. 풍년화의 개화를 기다리는 건, 달리 이야기하면 풍년을 기다리는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기다림 끝에 피어나는 꽃을 보고 농부들은 위안 받을 수 있었고, 그렇게 시작되는 농사일은 한결 가벼울 수 있었다. 나무의 이름에는 그렇게 사람살이의 소망이 스며들었다.

봄을 불러온 풍년화 꽃을 보니 옛 사람들의 바람처럼 올 한 해 우리의 살림살이도 나아질 것이라는 조짐으로 받아들이고 싶어진다. 꽃송이를 타고 찾아오는 봄이 그래서 더 반갑다.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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