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인사이드-정철훈] 상처받은 용 기사의 사진

여기 한 젊은 작가가 있다. 그는 2000년 고교를 자퇴한 뒤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에 입학할 때까지 긴 시간을 방황하며 보냈다. 세상에 불만은 많은데, 토로할 데가 없었기에 인터넷 블로그에 매달려 미친 듯이 글을 썼다.



그 어두웠던 경험이 작가가 되는데 자양분이 됐다. 그에게 고교 자퇴는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정치적 각성을 일으킨 사건으로 기억된다. 이후 대안학교 친구들과 어울렸고 진보정당이라든지 반전운동 같은데 관심을 갖게 된다. 개인의 문제를 사회적 차원의 이슈로 전환시키거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현상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일은 대학에 들어가서도 계속됐다.

학내 분위기는 다분히 보수적이어서 미학적 완성도에 치중하는 반면 정치적인 색채에 대해서는 과도한 혐오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개인적으로는 다들 정치적인 문제에 불만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지 않고 혼자 마음 속에 담아두는 경향도 나타났다. 정치적인 문제를 예술의 형식으로 다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 즈음, 정권이 바뀌고 광화문 촛불집회와 학과 존립문제가 얽히면서 그는 문학과 정치의 역설적 상관관계에 눈뜨게 된다. 내용보다 스타일에 치중하는 학내 분위기에 염증을 느낀 그는 오히려 반발심으로 정치 색채가 강한 소설을 쓰자고 마음 먹는다.

대학 재학 시절인 스물 한살 때 단편 ‘영이’로 등단한 김사과(26)가 계간 창비 올 봄호에 털어놓은 작가로서의 성장기다. 그의 진술은 정치적 각성이 한 작가의 탄생에 얼마나 중요한 토양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각성을 먹고 자라는 생명체이기는 문학이나 정치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문학의 경우, 정치와는 그 본질을 달리한다. 세상을 지금보다 좀 더 낫게 만들려는 행위가 정치라면, 삶의 의미를 확장시키고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행위가 문학이다.

문학과 정치는 늘 조우(遭遇)해왔지만 조우 방식에 따라 양자가 저질화되기도 하고 상생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예컨대 소련 당시의 스탈린이 아방가르드 문화를 억압하고 소비에트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발레와 문학 등 모든 걸 평준화시켰을 때 예술은 최악의 상태로 추락했다.

최근 ‘불법 시위 불참 확인서’를 놓고 빚어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작가회의의 갈등도 문학과 정치가 만나 양쪽 모두의 수준을 동반 추락시킨 경우에 해당된다.

문학예술이란 게 본질적으로 아나키스트적인 행태가 있기에 문학인들은 다분히 정치로부터 독립하려는 경향을 띠어왔다는 것은 역사가 말해준다. 그런 작가들에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시위에 대한 불참 확인서를 요구했으니 이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의장국 자격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문화행정의 퇴행에 다름 아니다. 어느 나라든 관변 문화가 있게 마련이라지만 보조금을 내세워 ‘시위 불참 각서’를 받아내겠다는 건 억지춘향의 차원을 넘어 무뇌아 수준의 발상에 가깝다.



김사과의 예처럼 작가들은 억압할수록 저항하는 본능의 소유자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격’이라든지 ‘길 가다 뺨 맞은 격’이라는 작가회의측 반응은 현 정부의 문화정책이 얼마나 황당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억압 기제를 여과없이 작가회의측에 전달한 관변 문화의 주역들이 여전히 거들먹거리고 있다니 이보다 시대착오적인 현상은 없을 듯 하다.



대한민국에서 흔히 정치는 무거움과 동일시된다. 그러나 문학예술은 애당초 중력을 극복하려는 노력이고 중력에 반하는 노동인 것이다. 그게 정치와 문학이 병립할 수 없는 이유다. 상처받은 용들은 상처를 통해서 응집력을 강화했으면 했지 결코 승복하지 않는다. 작가회의 소속 회원들은 각 매체를 통해 저항적 글쓰기에 나선다니 이 또한 얼마나 불행한 언어 소모 과정이 될 것인가. 정치가 미숙해서 생긴 일은 정치쪽에서 풀어야 한다. 문화예술위는 우선 지침 철회에서부터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물꼬를 틔워야 한다. 그게 순리다.

정철훈 문화부장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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