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동욱] 대통령, 공감의 지평 더 넓혀야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은 국운 융성의 길에 들어섰다. 세계를 혼돈상태로 몰아넣은 경제 위기를 의연히 버텨내는 모습은 그 증거의 하나다. 스포츠 세계를 국운에 대비시켜 보면 절로 신이 난다. 86 아시안게임을 치른 후 우리는 아시아 변방을 벗어났다. 88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후 세계의 중심으로 용솟음쳤다. 그 서사시가 지금 다시 펼쳐지고 있다.

이미 정상에 있는 김연아에 이어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스피드 스케이팅을 지배한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 등의 모습은 서사시의 정점이다. 동계 올림픽 종목은 선진국형 스포츠다. 많은 투자가 있어야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유전자가 다른 것인지 상상도 못한 쾌거를 신세대는 만들어냈다. 대한민국에 선진국형 신인류가 출현한 것이다.

국운 융성의 기운은 충분

스포츠 쾌거를 갖고 국운 융성 운운하면 논리의 비약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이는 단순히 논리의 비약이 아니다. 바로 공감(sympathy)이라는 단어 하나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공감은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시장의 기능을 말하기 전에 ‘도덕감정론’에서 강조한 것이다. 국가나 정부가 개입해서 세상과 시장을 움직이는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지배하는 현재는 공감이 정부나 국가보다 앞선다.

스포츠는 공감의 최첨단에 있다. 승자에게만 공감하는 것이 아니다. 좌절과 눈물의 시간을 통해 진정한 용기를 보여준 이규혁에 대해서도 우리는 공감한다. 공감은 승자와 패자의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의 모두를 함께 느끼게 만드는 공감은 국운을 융성시키는 근인이 된다. 이는 역사가 증명해왔다.

이제 국운 융성의 기운은 충분하다. 성스러운 전조를 가로막는 하나의 장애를 들라면 정치이다. 정치의 중심에는 대통령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나름대로 화려하게 출발했다. 전봇대를 뽑을 때까지만 해도 국민이 공감하는 대통령이었다. 겸손과 절제를 상실하면서 여러 잡음이 나오더니 집권 일년은 촛불시위로 날려버렸다. 집권 이년 차부터는 못한 일에 대한 조급증 탓인지 다툼을 확대하고 있다. 그 상징으로 집권 여당까지 분열시키고 있는 세종시 문제가 있다. 정치가 혼란스러운 것은 공감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남은 임기동안 동계 올림픽의 영웅들처럼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 공감의 지평을 한없이 넓혀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공감을 얻는 길은 역사와 현실, 그리고 상상의 접점에서 찾아낼 수 있다. 그 접점에서 정책을 만들고 소망스러운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정치를 해야 한다.

공감의 지평이 넓어지면 모두의 가슴을 울리고 함께 떨쳐 일어나는 순간들이 정치와 정책의 과정을 지배한다. 이를 위해서는 실로 많은 것이 필요하다. 미래에 대해 링컨 같은 비전이 있어야 한다. 대공황 당시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라고 한 루스벨트 같은 수사도 있어야 한다. 개방·공유·참여라는 시대정신에도 투철해야 한다. 변증법적 발전의 동선을 찾아내는 참모조직과 팀도 필요하다.

할 수 있는 일만 해야 한다

무엇보다 공감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대통령이 명심해야 할 것들은 도덕과 국민, 그리고 세월이다. 임기 말이 될수록 측근이나 친인척의 전횡과 비리가 파헤쳐지곤 했다. 우리의 슬픈 역사다. 지금 괜찮다고 경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취임 때의 초심과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국민의 공감을 얻는 것은 지난한 길이나 마음이 떠나는 것은 순간이다.

이제 3년 남았다.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 3년 동안 할 수 있는 일만 해야 한다. 다 하려고 하면 아무 것도 못할 수 있다. 하나라도 국민의 공감을 얻으면 다른 것도 공감하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맑고 너그러운 국민이다. 국민과 세월을 두려워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임동욱 (충주대 행정학과 교수, 한국대통령학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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