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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1등만 사는 세상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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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직업인지라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그중에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말 잘난 사람들도 많다. 그런가 하면 저래 가지고 이 험한 세상 어찌 살까 싶을 정도로 어수룩한 사람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나보다 잘나 보이는 사람이 모두 나보다 성공해서 행복한 것 같지도 않고, 반대로 어수룩한 사람이 모두 나보다 성공하지 못해서 불행한 것 같지도 않다.



강박관념이 부른 비극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어 우리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메모리 반도체 공정기술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라는 삼성전자 부사장이 투신했다. 최근에는 모 대학병원 교수가 병원 옥상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며, 또 초전도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알려진 물리학 교수가 자살했다.

이들은 세속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성공한 사람이다.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고, 사회적으로도 모두 존경받을 만한 위치에 있었던 이들이다.

겉으로 봐선 남부러울 게 없는 그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건 한결같이 ‘최고’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이라고 한다. “이 분야에서 최고인 내가 밀려나는 건 아닌가” “세계적인 논문을 내야 하는데 힘들다”는 등의 유서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들이 이처럼 ‘최고’에 강박관념을 갖는 건 말할 것도 없이 1등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경쟁사회의 역기능적 부산물이다. 극단적 선택을 한 그들은 사실은 자신들이 거쳐 온 경쟁사회에서 계속 선두를 달리며 실패의 경험 없이 사회의 스포트라이트와 혜택을 받던 사람들이다. 처음부터 뒤처졌던 사람들이라면 ‘최고’에 대한 강박관념이 없을 텐데, 줄곧 박수와 찬사만 받다 보니 그것들이 사라지고 자칫 인정을 못 받아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못 견디게 두려운 것이다. 이러한 희생자들이 특히 전문가 집단, 그러니까 수재나 영재 소리를 듣던 사람들 가운데에서 많이 나오는 것도 그러한 까닭일 터이다.

위너의 불행, 루저의 행복

기자는 자유경쟁주의자다. 경쟁이 세상을 이만큼 발전시켰다고 믿는다.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 들어설 수 있게 된 것은 우리 국민의 교육열이며, 그 교육열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남의 자식보다 내 자식을 더 훌륭하게 키우겠다는 경쟁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처럼 경쟁의 여러 역기능보다 순기능 쪽을 더 중시하는 기자는 교육에서도 경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우리말도 못하는 아이에게 외국어 공부를 시키는 식의 경쟁에 대해선 생각이 다르지만). 무엇보다도 어떤 분야의 최고가 인류 또는 한 나라를 위해 기여하는 바를 생각할 땐 더욱 그렇다.

우리가 경쟁사회에서 최고를 지향하고 위너(승자)가 되는 건 바람직한 일이며 일부러 루저(패자)가 될 필요까지야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너도 때론 루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고, 어떤 면에선 루저의 경험이 유익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모르긴 해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고의 권위자들은 루저의 경험이 없었을 듯싶다.

개그 프로 중에 나오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대사가 유행한다. 실제로 세상은 1등만 기억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세상은 1등만 사는 곳이 아니다. 이 세상은 꼴찌도 살고, 그것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곳이다.

말이 좀 샛길로 빠지는 느낌이지만, 엊그제 사내 특강에서 김성진 가천의대 석좌교수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미래 인류의 사망 원인 1위는 암도 아니요 당뇨병도 아니고 우울증이 될 것이란다. 우울증과 이어지는 자살이 사망 원인 1위가 된다는 것은 물질문명의 발달과는 반대로 인류의 정신이 피폐해지고 극도의 강박관념들이 만연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를 최소화하는 데는 가정과 학교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종교가 그 가장 큰 몫을 맡아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무이사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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