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용백] 우크라이나를 보며 기사의 사진

우크라이나 정치인 율리야 티모셴코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외신에 많이 등장하기도 하거니와 지난해 7월 우크라이나 총리로서 경제협력 논의 차 한국에 왔었다. 1992년 한국과 수교 이후 우크라이나 총리의 방한은 그가 처음이었다.

티모셴코 총리는 올해 1월 17일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여권의 한 후보로 나섰다. 친 서방 성향의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과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채 각자 출마했다. 현직 대통령과 총리가 모두 대선 후보로 나선 상황이었다. 티모셴코와 유셴코는 5년 전

‘오렌지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혁명동지였지만 정권 내내 사사건건 갈등과 반목을 낳았다. 투표 결과 유셴코는 득표율 5.42%로 체면을 구겼다. 2위 티모셴코는 1위인 친 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와 지난 2월 7일 결선 투표까지 갔지만 득표율 3.48% 포인트 차로 패했다. 국민적 심판이었다.

‘오렌지혁명’에 의해 수립된 정권이 반혁명세력 리더로 내몰렸던 야누코비치에게 5년 만에 고스란히 정권을 내줬다. 국가의 ‘미래’를 공약했던 혁명정권이 무너졌는데도 우크라이나 국민 다수가 후회하지 않았다. 혁명정권에 대한 실망감과 비난을 감추지도 않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그렇다고 새 정권에 대한 국민적 기대도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차라리 정권이 바뀌는 게 나을 거라는 자조(自嘲) 분위기가 팽배해 보인다.

시민혁명 분위기 속에 정권 교체를 이룬 5년 전의 우크라이나엔 국민적 에너지가 얼마나 용솟음쳤을까. 하지만 5년 내내 파쟁(派爭)과 부패, 경제재건 실패, 개혁 실종 등이 국민을 등 돌리게 했다. 개혁 의지가 희석되고, 소통이 부족하면 국민적 실망감을 추스를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2005년 1월의 우크라이나 상황은 한국에도 시사점이 충분했었다. 당시 진보 성향의 노무현 정부가 출범 3년째를 맞을 무렵이었다. 그때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개혁의지가 없다면 정권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논지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이 보수 성향의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켰다는 2007년 12월의 대선 분석은 가장 설득력이 있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정권 교체를 다시 한국 정치사회상에 빗대도 터무니없진 않을 듯하다. 집권 3년째인 현 정부는 아직도 개혁 드라이브를 걸 만큼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는가. 정권 내부는 물론 계층 간 소통과 국민적 화합에 자신감이 있는가. 대답은 주관적일 수 있지만 ‘고개 갸우뚱’이다.

‘대운하 건설’로, ‘4대강 사업’으로, ‘세종시 건설’로 꼬리를 물고 정치와 사회가 소란스럽고 명분만이 난무한다. 온 국민을 골치 아프게 하는 이 국가적 프로젝트들은 합의와 소통 결여로 좀처럼 진척되지 못한다. 현 정부의 명운을 건 개혁적 프로젝트들인지 의심을 살 만하다.

우크라이나 혁명정권도 과제가 있었다. 경제도 살려야 했고, 국민적 화합도 이뤄야 했다. 권위주의 정부에서 자유민주주의 정부로 이행하기 위한 개혁 추진은 더욱 중요했다. 하지만 유셴코와 티모셴코의 방법론적 이견은 정치적 분열과 반목으로 확대됐고, 정권 몰락으로 귀결됐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것이다.

정권욕에 눈이 먼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적 에너지와 시간, 국가 재원을 소모시킬 가능성이 크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면서 국민을 괴롭히고, 지역적 갈등을 부추기고, 정치적 목적에만 골몰하는 정치 행위를 하기 쉽다는 얘기다. 국가의 역사를 진전시키지 못한 경우엔 그 손실을 헤아리기 어렵다. 자고로 정치의 이상은 국민을 편하고도 잘살게 하는 것.

우크라이나 정권이 한창 국정을 수행할 무렵인 2013년 초 한국에선 다시 새 정부가 출범한다. 당분간 우크라이나는 하나의 역사성을 갖고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교훈을 남길 가능성이 있다.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젊은이들의 유쾌한 메달 획득 소식은 세계를 매료시키고 감동을 안겼다. 우리 정치와 사회는 이를 인큐베이팅(incubating)할 수 있는가.

김용백 국제부장 ybki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