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정승훈]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기사의 사진

스포츠 스타들이 퍽 부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이에 비해 돈을 많이 번다는 것도 부럽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도 부럽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질투를 느낄 때는 승리의 순간, 목표를 이뤄낸 바로 그 순간 그들이 맛보았을 환희 그 자체다.

야구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쳤을 때의 느낌은 어떨까.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연장전 골든 골을 넣었을 때는 무슨 생각이 날까.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고 칭송받는 선수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했을 때 포효하는 기분은 어떨까.

보름 넘는 기간 동안 2010 밴쿠버 동계 올림픽을 지켜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도 눈물보다 환한 웃음이 더 익숙한 세대지만 시상대에 올라서서 눈물짓는 이상화나 김연아를 보며 가슴이 찡해졌다. 정말 기뻐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언제였던가.

김연아의 경기를 앞두고 그의 자서전을 읽었다. 피겨는 김연아가 시작할 때만 해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이전에 누구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분야였다. ‘이만하면 많이 했어. 내일 하면 되잖아. 그만 하자’고 유혹하는 마음 속 자신의 말에 귀를 닫고 김연아는 이를 악물고 한 번 더 뛰었다. 하나의 점프를 완성하기 위해 수천 번 뛰어올랐던 노력 끝에 그는 끝내 꿈을 이뤄냈다.

태극기를 손에 든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이상화도 마찬가지였다. 이전까지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여자 선수가 메달을 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4년 전 토리노 올림픽에서 좌절을 맛보고 이후 대표선수 선발전에서도 탈락하며 그는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일어서서 준비했다. 절치부심한 덕분에 4년 전에는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지만 올해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운동선수로 성공한 이들 가운데 뼈를 깎는 고통 없이 정상의 자리에 오른 이는 없다. 하지만 김연아와 이상화의 눈물이 더욱 아름답고 가치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 앞에 서 있는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그 길을 걸었고, 마침내 세계 정상에 우뚝 섰기 때문이다.

과거 박찬호도 그랬고 박지성도 그랬다. 박찬호 이전에는 한국 야구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가서 최고의 스타가 될 것이란 얘기는 꿈에 불과했다. 박지성 이전에는 한국 축구 선수가 세계 최고의 팀에서 당당하게 활약할 것이라는 소리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다.

그들 역시 처음부터 일약 스타가 된 것은 아니다. 박찬호는 2년여 마이너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씹어야 했고, 박지성 역시 유럽에 처음 갔을 때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홈 팬들의 야유를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좌절하지 않았고, 마침내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가슴 찡한 감격은 꼭 시상대의 맨 윗자리에 올라야만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봅슬레이 대표팀이 태극기가 달린 썰매로 올림픽 코스를 달려 세계 19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부러웠다.

봅슬레이 대표팀은 전용 경기장이 국내에 없어 국가대표 선발전마저 일본에서 치러야 했다. 썰매를 운전하는 강광배는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고 좌절했던 알파인스키 선수 출신이었고 나머지 선수도 모두 좌절을 겪은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열악한 여건과 무관심을 뚫고 일본을 누른다는 목표를 이뤄냈다.

결선 1라운드까지 진출했던 스키점프 대표팀의 김현기 최흥철(이상 하이원)과 모굴 스키의 서정화(남가주대), 스노보드의 김호준(한국체대) 등에게도 이번 올림픽은 감격스러운 무대였다. 메달도 따지 못했고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스스로 세웠던 목표에 한 발짝 다가서는 환희를 맛봤다.

다음 동계 올림픽에서도 비인기 종목으로 취급받고 있는 이들 설상(雪上) 종목에서 감격을 맛보기 위해 새롭게 도전하는 이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실패와 좌절을 딛고 눈 위에 땀을 쏟는 이들이 있는 한 제2의 김연아, 제2의 이상화는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정승훈 체육부 차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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